음모론 저장소

(펌글) 홀로코스트는 허구일까?

작성자
탐 크루저
작성일
2022-02-18 23:10
조회
910
https://blog.daum.net/freebosang/373

1. 독가스는 완벽히 날조된 주장.
아우슈비츠에는 밀폐시설도 없었고 그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면
그만한 뼛가루와 시체가 나와야 했지만 그렇지 않음.

2. 나치 독일이 망해 갈 때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해서
수용소 포로들을 위한 식량 수송차량이 돌아다니기도 힘들었음.
연합군 항공기에 차량이 족족 폭파되어
아우슈비츠 사망자를 보면 대부분 아사했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함.
이는 나치독일과 국제적십자회의 통신에 나옴.

3.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반박하는 책은 백권이 넘는다.

4. 이스라엘은 여러 종류  홀로코스트 보상금으로 매년 약 700억불을 받고 있고
배당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침범해서 온갖 패악질과 양아치질을 일삼는 이스라엘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남의 땅에 불법점거하여 나라를 세웠을 때 돈이 있어야 했는데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자본이 있어서 이렇게 단기간 군가강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중심에는 독일의 지원금이 있었다.

5.

1984년 소련이 최초로 공개한 아우슈비츠 관련 문서들을 토대로 작성된 국제적십자협회의 해당년도 12월 31일자 감사보고서에는 독일이전쟁기간(1939-1945) 동안 운영했던 모든 강제수용소들에서 발생한 총 사망자수(모든 국적과 사망원인 포함)282,077명으로 나타나 있다.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는 53,633명이다.

2차대전 前後 세계 유태인 인구

World Almanac, 1929- 15,630,000 (p.727)

World Almanac, 1933- 15,316,359 (p.419)

World Almanac, 1936- 15,753,633 (p.748)

미국유태인위원회(AJC, Bureau of the Synagogue Council), 1939- 15,600,000

World Almanac, 1940- 15,319,359 (p.129)

World Almanac, 1941- 15,748,091 (p.510)

World Almanac, 1947- 15,690,000 (p.748)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루머는 승전국들의 패악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18, 한국 위안부도 그렇지만 깊게 파보면 정말 말이 안된다는 것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한 학살도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518 단체나 이스라엘 유대인이나 지원금 받아처먹는 꼬라지와 온갖
추잡한 행패는 꼭 빼닮았군요

이스라엘이 기독교 국가긴 개뿔 유대교 이슬람이 90%입니다
몇몇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빨아재끼고 있는데 웃음만 나옵니다



(링크 내 정보)

 

파일다운로드 안되면 http://cafe.daum.net/freemicro/1Cp3/233

유태인저자 아우슈비츠의 진실을 고백하다 -타살당함-

 어느아슈게나지유대인의고백_20150322.pdf

안네프랑크를 각색할때 참조한 서적

 diary of a young girl 1862.pdf

안네프랑크 원본 두개의 파일(구하기힘듬)

 3_The_Diary_of_a_Young_Girl.pdf

 

 Anne-Frank-The-Diary-Of-A-Young-Girl.pdf

연방공개시장 파일

 fomcminutes20150128.pdf

http://topfree.kr/xe/?mid=Notice&doc-ument_srl=26681&listStyle=viewer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2677&logId=397114

 유태인 홀로코스트, 어디까지가 진실인가_ - 유태인에 대한 진실.html

유태인 학살의 진실

미국이(정확히 말하면 유대인들이) 독일과 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기위해 '홀로코스트'를 역사적 사실로 만들어 현재까지도 독일은 그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1. 유럽에서 "외국인 차별금지법"이라는게 있는데, 아시아나 중동 출신 유럽거주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사실 하나가 이 "외국인 차별 금지법"이 마치 자신들(아시아/중동/아프리카)을 위해 생격난 법으로 착각하고 있다는거.

이 법의 첫번째 대상은 "유대인-이스라엘인"이 유럽(특히 독일)에 거주하는 그 어떠한 조건 없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주는 법이다. 취업은 물론이고...

2. 매년 2차대전 패전일 만되면 독일은 의무적으로 방송을 통해 나치의 잔학상을 다큐등을 통해 방송해야함.

3. 현재까지도 독일은 유대인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음.

4. 유럽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반유대인을 외치면 불법이라는 사실. 특히 공인이 히틀러를 옹호하거나 반유대인적인 표현을 할경우 그는 사실상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됨.

5. 2차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국가를 설립하는데도 유럽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법적, 사회적 '타부'가 있었기 때문임. 현재도 이스라엘이 제아무리 개 망나니짓을 해도 유럽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못함.

그러니까 한마디로 미국의 이러한 '홀로코스트'라는 특대형 조작을 통해 유럽과 독일에서 유대인들의 확실한 지위권을 확보하게 해주었다는 사실.

그렇담, 진실은?

1. 가스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유대인학살로 유명해진 아우슈비츠의 '샤워실'은 세계인들이 나치의 잔인함을 생각하게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근데...이 샤워실에서는 한번도 독가스가 나온적이 없다고 함. 그건 일반적인 샤워실이었음. 현재 아우슈비츠에는 이러한 사실이 명기되있다고함.

2. 전쟁 이전과 전쟁이후 유럽에서의 유대인 인구통계표. 만일 100만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면 그 통계표에 분명 전쟁후 유대인의 인구감소가 뚜렸하게 나타났어야하는데 사실상 유대인의 인구통계는 정상보다 약간 줄어든 상태였다고...

3. 유대인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전쟁후기에 발생했다고함. 그것도 나치에의해 사살된게 아니라 굶어죽었다고. 왜? 미군과 연합군들이 유대인 수용소로 가는 모든 보급로를 차단했고, 나치역시 퇘각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미군들이 유대인수용소를 발견했을때 많은 유대인 아사자들이 발견된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었다고함.

4. 그렇다면 유대인 수용소는 왜 만들어졌나?
실제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집단 이주시킨것은 학살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을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중요한 인력으로 나치가 분류했기 때문이라고함. 실제로 나치보고서에의하면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사살된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수용소 내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유대인들을 법에의해 처벌한 것이었다고 함.

5. 목격자들은?
실제로 가스실이나 시체를 태우거나 생체실험을 한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 이러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전후 전범재판을 하면서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유대인들이 '소문(근거없는)'으로 들었던 것을 이야기했다고.

오늘 독일자 온라인신문에 이란 대통령이 다시한번 공개적인 석상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미국의 가장큰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덧붙이길...이스라엘은 '암세포' 같은 나라라고 ㅋㅋ...푸틴하고 비슷한 화법으로 나가네...

미제국주의가 몰락하면서 꼭 밝혀져야할 역사의 진실, 그 하나는 바로 "유대인학살 조작"이라는 사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전승유태자본을 해체한다
The Host Enemy among us, Anatomy of JewishCapitalism

 

Journal by Joon H. Park
Analytic Article by 
선악의 사도

단 군 박공이 공지한대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의 주 적이 누구인지를 낱낱이 알아보기로 하겠는데요, 일단 들어가기 전에 지난 2차세계 대전에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서 자행 되었다고 알려진 유태민족의 대 학살(Holocaust to Jews)이 아직도 사실인양믿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진실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세상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본연의얼굴을 드러내는 법, 그 대학살이 진실은 둘째치고 전혀 사실 무근 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다.

당 시의대 학살 극이 발생한 곳은 다들 알다시피 독일 땅 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독일 내에 거주하던 전체유태인구가 고작 5십만 명 이었음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러면, 미국과 그 상전인 유태자본이 지난70여 년간 외친 그들만의 대학살 극에서 희생당한 6백만 명의 유태인들은 과연 어디서 “급조” 된 걸까요?

장황하게 제가 뭐라 하는 것보다 이미 이 분야에서 많은 공부를 해오신 몇 분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효과적 이라고 할 수 있어서 아래의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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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전 당시 유태() 박해  학살의 진상

첫째 - 1차대전직 후까지 독일은 유대인에 대해 관대했다
유태인 박해는 다른 유럽국가들이 심했으며 독일은 오히려 관대했다. 그래서 많은 유태인들이 2차 대전 전에는 독일에 가장 많이 거주 했다. 그리고 독일계 유태인 금융재벌인 막스바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걸로 유명하다.

둘째 - 독일은 유태인들에 대해 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다
독 일 유태인들은 다른 유럽 국에 비해 출세나 사업을 하기 쉬웠고 이들은 학계, 법조계, 의학계, 금융계, 언론계 등 독일사회전분야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유태인들은 독일사회와 화합하려 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일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원인이된다(1992년 LA폭동 때 빈민폭도들이 자수성가한 한인교포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약탈한 것과, 인도네시아 폭동 때 짱골라교포들이원주민들에게 당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셋째 - 독일은 유태인의 독립국가 형성에 신경을 썼다
1933~1941 년까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독일의 밀텐슈타인이 유대인이주를 하인리히 히믈러 SS사령관은시온주의자의 대아랍 지하군사 조직인 '하가나'의 활동을 도왔다.), 1942년 요제프 괴밸스의 본격적인 유태인박해 주장이 나오기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유태인 학살 보다는 그들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으로 보내 그들만의 국가를 형성시키고 나중에 독일의우방으로 삶으려 했다.

넷째 - 독일의 등뒤에 칼을 꽃은 유태인
독 일이 친 영국 성향의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 하자 당시 독일의 경제를 잡고 있던 유태인들은 독일을 굴복시키기 위해 독일의수출을 분쇄시키고 전세계적인 독일상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활동을 신성한 전쟁이라고 하면서 세계 유태인경제 연합회회장인 운터마이어가 앞장을 선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일부 유태인이 연합군과 결탁하여 연합군의 폭격을 유도하는 신호등을장착하는 등의 밀정행위를 하자 히틀러는 모든 유태인을 수용소에 감금 시킨다.
이쯤 되면 유대인의 행위는 국가 반역죄에 해당되며 국가반역죄는 어느 나라에서나 사형에 해당 된다.

다섯째 - 그러나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만다
시 온의 칙훈서(유태인의 세계경영지침서)가 발견되어 알려지고, 공산당활동에 유태인들의 간접협조한 혐의와, 1936년 프랑스주체 독일외교관을 암살하자 반 유대감정으로 독일이 들끓기 시작했고 크리스탈학살 사건으로 유태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더 이상의 피해를막기 위해 유태인이 학살당하지 않도록 2만 명의 유태인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수용하게 된다.
좀더 덧붙여서 말하자면독일을 패하게 만든 세계 1차대전의 배후에는 바질 자하로프라는 유대인 전쟁무기상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영국의 군수재벌인빅커스사의 영업이사로써 친독일적인 그리스 국왕을 추방하여 세계대전의 장기화를 획책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군사기밀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빼돌린 사실 하나 만으로도 독일이 유대인을 증오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영국군이 사용한 수류탄은 독일의 기술로 만들어진 수류탄으로써 이 성능 좋은 독일 제 수류탄이 독일군을 죽이는 촌극까지 벌어지게된다.

여섯째 - 유태인 600만 학살은 조작 확대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발진티푸스와 장티푸스)
실 제로는 60만정도이며 그것도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과 전염병(더이상의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시체들을 소각하게 된다)으로 사망한사람이 대다수이다 25(7.6평)평방미터 되는 곳에 7~800명을 집어넣고 독가스로 죽였다는데, 실제론 그런 계산이 안나옴니다,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전시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소각로는 194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탈린의 소련군 또한 폴란드 유태인을 많이죽였으며 나중에 이것마저 독일의 만행으로 뒤집어 쓰게 된다.

 

유태인 홀로코스트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내 가 알기로 이 세상에서 유대인만큼 그들이 겪었다는 수모와 고난과 순교에 대해 우는 소리를 하는 족속도 없을 것이다. 모르는사람이 보면 이들이야말로 유럽의 정치와 경제, 주식시장, 그리고 국가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실질적 군주들이란 사실을 알 수 없을정도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1919년에 유태인 희생자가 600만명?
1 차대전 직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 진위를 떠나 이 전쟁에 대한 유태인 국제은행가들의 배후 음모설이 무성했다. 서구의 유태계언론은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런 맥락에서 1919년 미국의 유태계 유력지 AmericanHebrew 에 실렸던 한 기사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눈길을 끈다:

“유 태인 남자와 여자 600만 명이 생필품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80만 명의 어린 아이들이 주린 배를 안고 울부짖고 있다.이러한 비참한 운명은 이들이 신의 계명이나 인간의 법을 어겨서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과 유태인의 피를 원하는 가혹한 인종차별주의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이와 같은 홀로코스트는...” (TheCrucifixion of Jews Must Stop!, October 11, 1919)

유 태인 희생자 600만 명이라는 수치는 2차대전과 관련하여 또 다시 등장하게 된다. 뉴욕의 유태교 랍비 이스라엘 골드슈타인은1942년 12월13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당시까지 독일 점령지의 유태인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했으며, 1943년3월2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유태인들의 독일규탄집회에 대한 1943년 3월 2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랍비헤르츠(Rabbi Hertz)는 히틀러 정권에 희생된 유태인의 수가 600만 명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2 세기 로마 치하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바코크바 항쟁에 관해 탈무드(Gittin. 57b-58a)는 로마군이 베타르에서40억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으며 1천6백만 명의 유태인 어린이들을 두루마리에 감아 불태워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당시에 40억 명의 유태인은 고사하고 1천6백만 명의 유태인 유아들이 지구상에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홀로코스트 (Holocaust)

A. 美-英의 프로파간다
- 이미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진 유태인의 기름으로 만든 비누(Haaretz, Nazi Soap StoriesTermed'Invention', February 11, 2005)나 멩겔레 박사의 생체실험에 대한 얘기는 고사하더라도 2차 대전 중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요언론의 反 독일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한때 미국에서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유태인들이 조직적으로감전사(感電死) 당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들까지 가미된 기사가 유포되기도 했다. (이 기사에는 가스실에 대한 언급이 없다.)1945년 2월 미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소련 병사들의증언을 토대로 독일군이 “일시에 수백 명을 전기 처형할 수 있는 특수 콘베어 벨트를 가동했고 시신들은 벨트에 의해 소각로에 옮겨져 몇 초 내에 화장된 뒤 그 재는 근처 양배추 밭의 비료로 쓰였다...”고 보도했다. (United Press dispatch from Moscow; Washington D.C.Daily News, February 2, 1945)

-당시 현직 미국 대법원 판사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연합국측 수석검사로 활약했던 Robert Jackson은 독일군이 일시에 2만 명의 유태인을 자취도 없이 “증발”시킬 수 있는 “새로 발명된”기계를 아우슈비츠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blue series, Vol. 16,June 21, 1946)

B. 유태인 희생자 600만 명 (아우슈비츠 사망자 400만 명에 근거)
-1990년까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기념관에 있었던 추모석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40년에서 1945년까지 이곳에서 수감자 400만 명이 나치 살인마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교체된 새 추모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곳이 영원히 인류에 대한 절망의 울부짖음과 경종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곳에서 나치스는 150만 명의 남자, 여자, 그리고어린이를 살해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이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1940-1945.”

1991년 10월 20일자 벨기에 일간지 Le Soir 에 따르면, “국제 아우슈비츠 보존위원회는 1990년 11월 400만 명의 희생자를 명시했던 아우슈비츠의 추모석판을 “150만 이상의 희생자”로 표기되어 있는 새 석판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1989 년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역사가 예후다 바우어(Yehuda Bauer) 교수는 이제까지 아무 이의 없이 수용되어 왔던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희생자 400만 명設이 의도적인 허구임을 인정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1990년 7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기념관은 이스라엘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공동으로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도합해 약 100만 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고발표했다. 두 기관은 이들 가운데 몇 명이 의도적으로 처형되었으며, 몇 명이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았다. (Y. Bauer,Fighting the Distortions, Jerusalem Post - Israel,September 22, 1989)

-1998 년 9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아우슈비츠에서 400만 명의 유태인이독가스로 살해되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월터 라이히(Walter Reich) 前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라이히는 보다 사실에 가까운 숫자는 110만에서 150만일 것이라고 밝혔다.

-유명한 홀로코스트 역사가제랄드 라이트링어(GeraldReitlinger)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유태인의 숫자를 약 70만으로 추정했다. 좀더 근래에들어서, 프랑스 홀로코스트 역사가 장-끌로드 프레삭(Jean-Claude Pressac)은 아우슈비츠의 총사망자 80만 가운데63만 명을 유태계로 추정했다. (G.Reitlinger, The Final Solution, 1971; J. C.Pressac, Le Crematoires d'Auschwitz:La Machinerie du meurtre de mass,1993)

-1990년 5월 31일 프랑스의 보수성향 시사지 National Hebdo 는 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비유태인 포함)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떻게 수정되어 왔는가를 보도했다:
“8 백만(프랑스 전범조사국) - 5백만(르몽드, 1978년 4월20일자) - 4백만(1990년까지의 아우슈비츠 기념관 추모비) -3백만(아우슈비츠 소장 Rudolf Hoess의 자백) - 160만 (예후다 바우어 교수) - 125만(Raul Hilberg교수)- 85만(제럴드 라이트링어, The Final Solution) - 7만5천(소련 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아우슈비츠 관련문서들).”

(Source: National Journal, 2003)

Date            Officialsources ofinformation                                                                                Figures
31.12.1945   French Investigation Panel onNazi-War-Crimes                                                         8.000.000
19.08.1998   Chief Rabbi from Poland (S?ddeutscheZeitung)                                                       6.000.000
20.04.1978   Le Monde (French dailypaper)                                                                                 5.000.000
23.01.1995   Die Welt (German daily paper)                                                                                  5.000.000
20.04.1989   Eugen Kogon, Der SS-Staat (famous book of a holocaust survivor, page176)             4.500.000
31.12.1952   Der Neue Herder (Enzyclop., Germany) 7th edition (p.214)                                        4.500.000
01.10.1946   IMT-doc-ument 008-USSR (Nuremberg MilitaryTribunal)                                        4.000.000
02.05.1997   USA-Today (daily paperUSA)                                                                                  4.000.000
24.11.1989   Chief Prosecutor, Mr. Majorowsky, Wuppertal, Germany (indictment 12 Js1037/89)   4.000.000
26.07.1990   Allgem. J?dische Wo.Ztg. (Jewish weekly,Bonn)                                                      4.000.000
08.10.1993   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 Magazine)                                              4.000.000
25.01.1995   Wetzlarer Neue Zeitung (German dailypaper)                                                             4.000.000
01.10.1946   IMT-doc-ument 3868-PS (Nuremberg MilitaryTribunal)                                             3.000.000
01.01.1995   Damals (official monthly magazine on history, sponsored by the Bonngovernment)       3.000.000
18.07.1990    ThePeninsula Times (daily paper, S.Francisco,USA)                                                  2.000.000
25.07.1990   Hamburger Abendblatt (daily paperGermany)                                                             2.000.000
27.01.1995    DieWelt (German daily paper, quoting Chancellor H. Kohl. Minimum of 2million)         2.000.000
02.05.1997   USA-Today (daily paperUSA)                                                                                  1.500.000
11.06.1992   Allgem. J?dische Wo.Ztg (Jewish weekly,Bonn)                                                       1.500.000
08.10.1993   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Magazine)                                                1.500.000
23.01.1995   Die Welt (German dailypaper)                                                                                  1.500.000
03.05.2000    DieWelt (German dailypaper)                                                                                  1.500.000
01.09.1989   Le Monde (French dailypaper)                                                                                  1.433.000
02.02.1995   BUNTE Illustrierte (German weeklymagazine)                                                            1.400.000
22.01.1995   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edition)                                                        1.200.000
27.01.1995    DieWelt (German dailypaper)                                                                                   1.100.000
27.01.1995   IfZ (Institut for Contemporary History, M?nchen, a governmentinstitution)                    1.000.000
03.05.2000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reputed Germandaily)                                                1.000.000

31.12.1989   Pressac,Auschwitz, Technique ...(official report on Auschwitz,commissioned by theJewish BeateKlarsfeldFoundation)                                                                                                                      928.000
27.09.1993   Die Welt (German dailypaper)                                                                                      800.000
22.01.1995   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 edition)                                                         750.000
01.05.1994   Focus (German weeklymagazine)                                                                                 700.000
23.01.1995    DieWelt (German dailypaper)                                                                                      700.000
31.12.1994   Pressac,Die Krematorien ... (2nd official report on Auschwitz,commissioned by theJewish BeateKlarsfeldFoundation)                                                                                                                      470.000
08.01.1948   Welt im Film (British news reel, nbr.137)                                                                      300.000
06.01.1990   Frankfurter Rundschau (German dailypaper)                                                                   74.000
31.05.1994   Hoffmann,Stalins Vernichtungskrieg (Book on Stalin's war by a renownedGerman historian,p.302f.)                                                                                                                                                    74.000
17.08.1994   Intern. Red Cross Arolsen - Department of holocaust investigations (Ref. nbr.:10824)         66.206

C. 사망원인
- 전후 연합군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들의 운영과 관련된 수만 건의 독일 문서들을 획득했으나 이 가운데 독일 수뇌부가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려 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는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태계 역사가들은 독일이 연합군이진주하기 전 관련문서들을 소각했거나, 혹은 독일이 모종의 암호 문서를 통해 대량학살을 조직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연합군이확보한 독일 문서들 가운데 유태인에 대한 인종말살 계획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문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역사가들은이의를제기하지 않는다.

사 실 유태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압수된 독일 측 문서들은 독일과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강제수용소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시설이아니라 유태인과 전쟁포로들을 동원한 강제노동시설이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Arthur Butz 교수에 의하면,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다른 수용수로의 배치를 기다리는 수감자들을 수용했던 일종의 강제노동인력 집결 지였다. 아우슈비츠에서 많은희생자가 나온 이유는 노역이 불가능한 노약자나 병자가 주로 이곳에 수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탈출시도를 비롯한수용소규칙위반자들에 대한 처형사례를 제외하고 사망자 대다수의 사망원인은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특히 발진티푸스)의 창궐과 영양실조및 기아였다. (Arthur Butz, The Hoax of the Twentieth Century, 1976)

-유태계인 프린스턴대의 Arno Mayer 교수는 1942년 ‘반제회의’에서 도출되었다는 소위 ‘최종해법(Final Solution)'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사망자들 가운데 수용소 당국에 의해 처형된 숫자보다 각종 질병이나 기아에 의한 사망자의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밝히고 있다. (Arno Mayer, Why Did the Heavens Not Darken?: The'FinalSolution' in History, 1989)

- 전쟁 중반기부터 많은 강제수용소들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발진티푸스를 억제하기 위해 독일 당국은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의도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독일이 유태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 했다는 혐의에 반박하기 위해 피고측의 증거물로 제출된문서들에서도 드러난다. 한 예로 1942년 12월 28일 친위대 산하의 수용소 관리행정 국이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각 수용시설들에하달한 공문은, “Heinrich Himmler친위대 총감의 지상명령”이라는 전제 하에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의 절대적 감소를위해 수감자들의 건강 및 영양상태와 작업환경을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상부에 제출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Nurembergdoc-ument PS-2171, Annex 2. NC & A red series, Vol. 4, pp. 833-834)

D. 독가스 사용 설
-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을 대량 살상하기 위한 독가스 실이 가동되었다는 設은 독가스 실이나 처형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는유태인 前수감자들의 증언에 의존한다. 이는 전쟁 중 독일이 탄환 절약을 위해 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무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연합군은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강제수용소들에서 딱히 유태인을 지칭하는것이 아닌 수감자들이 독가스로 집단 처형되고 있다는 요지의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작성된 전단을 자주 살포했다. 또한 같은내용은연합군이 운영하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주기적으로 전 유럽에 방송되었다.

-MarikaFrank 라는 한 유태인 여성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수감되었을 때는 하루당 최소 2만5천명의 유태인들이 독가스로처형-화장되고 있었다는 1944년 7월 이었다. 1945년 2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그곳에 수감되어 있었던 그녀는아우슈비츠에 머무는 동안 가스실에 대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으며 그곳에서 유태인들이 독가스로 살해되었다는 얘기는 전쟁이끝난 뒤에 들었다고 술회했다. (SylviaRothschild, Voices from the Holocaust, 1981)

-33년간 듀퐁社에서 화공학자로 근무했던 William B.Lindsey 박사는 1985년 캐나다의 법정에서 독가스로 그 만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technicallyimpossible") 얘기라고 증언했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와 마이다넥에 전시되어 있는 가스실을 현지 조사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했다는 방법으로는 지클론-B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일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The Globeand Mail - Toronto, February 12, 1985)

*아 우슈비츠를 비롯한 주요 수용소들에는 실제로 이들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 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가스실이 존재했다. 이들의목적은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를 죽이기 위해 수용소 운영진을 포함, 수감자들의 의복과, 침구 등을 소독하는 것이었다. DDT가등장하기 전까지 지클론-B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던 대표적인 살균소독제였다.
-Fred A.Leuchter는 사형수를 처형하기 위한 가스실 제작 전문가로 미주리 주(州)교도소의 가스 사형집행실을 도안하고 제작했던 보스턴 출신의 공학자이다. 1988년 2월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넥 “가스실”에 대한 현장조사를 단행한 그는 법정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단정했다, “현 존하는 가스실 및 관련시설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 시설들에는 적절한 봉인장치와환기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이 시설들이 독가스로 인명을 살상하는데 사용되었다면독일인을 포함, 그 시설 밖에 있는사람들도 안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TheLeuchter Report: An Engineering Report on the Alleged Execution Gas Chambers atAuschwitz, Birkenau and Majdanek, 1988)

-1944 년 내내 매일같이 독가스로 살해된 수만 구의 시신들이 화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은 남아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대형화장터를 운영하는 Ivan Lagace는 1988년 4월 독일계 홀로코스트 연구가 Ernst Zundel 소송 심리에서 그와같은 일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하루당 1만에서 최고는 2만구에 이르는 시신들이 화장되었다는주장은 "한 마디로 비상식적(preposterous)”이며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beyond the realm of reality)”이라고 증언했다. (Canadian Jewish News - Toronto, April14, 1988)

E. 국제적십자협회(International RedCross) 보고서
“국제적십자협회 보고서가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전쟁의 말기를 향해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 수용소에서 대량 발생한 사망자들의 진정한 사망원인을 규명해주고 있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하면;

‘1944 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이후 독일의 수송체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특히 전쟁의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수용소들은 거의식량을 보급 받지 못했고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사자(餓死者)의 숫자는 급증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독일정부는1945년 2월 1일 이와 같은 사실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통보해 왔습니다... 1945년 3월, 적십자협회 회장은독일 친위대의 칼텐브루너 장군과 만나 문제를 논의했고 양자의 합의 하에 ICRC는 구호품을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있게 되었으며또한 ICRC 대리인을 수용소들에 상주시키게 되었습니다...’

수용소들에 대한 식량보급이 중단된 원인으로 독일 교통수송망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을 지목한 적십자는 수용소 수감자들의 안위를 위해 1944년 3월 15일, ‘연합군의 야만적인 폭격’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4년 10월 2일 ICRC는 수송체계의 붕괴로 인해 전 독일국민이 대규모 기아사태에직면해 있다는 우려를 독일 외무성에 전달했다. 영양실조와 기아, 이에 더해 의약품이 극도로 희귀했던 전쟁말기, 발진티푸스를비롯한 각종 전염병이 만연했다는 사실은 해방된 수용소들에서 연합군 병사들이 발견한많은 시체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실제로 독일전역에 흩어져 있었던 강제수용소들은 인근 도시들에서 발생한 폭격, 질병, 기아로 인한 독일인 사망자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역할도담당했다. 따라서 연합군이 발견한 시체더미에는 적지 않은 수의 독일인 시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 중 적십자위원으로일했던 스위스 태생의 Maurice Rossel 박사는 Serge Lanzmann과의 1993년 인터뷰에서 아우슈비츠를 예고없이 시찰한 그는 그곳에서 가스실이나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으며 시체를 태우는냄새도 접하지못했다고 말했다. Theresienstadt수용소에 그가 목격한 것은 좋은 옷을 입은 부유한 유태인들이 전쟁이 끝나기만을기다리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Richard E. Harwood, Did Six Million Really Die?,1988)

*1984 년 소련이 최초로 공개한 아우슈비츠 관련 문서들을 토대로 작성된 국제적십자협회의 해당년도 12월 31일자 감사보고서에는 독일이전쟁기간(1939-1945) 동안 운영했던 모든 강제수용소들에서 발생한 총 사망자수(모든 국적과 사망원인 포함)가282,077명으로 나타나 있다.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는 53,633 명이다.

F. 2차대전 前後 세계 유태인 인구
World Almanac, 1929- 15,630,000 (p.727)
World Almanac, 1933- 15,316,359 (p.419)
World Almanac, 1936- 15,753,633 (p.748)
미국유태인위원회(AJC, Bureau of the Synagogue Council), 1939- 15,600,000
World Almanac, 1940- 15,319,359 (p.129)
World Almanac, 1941- 15,748,091 (p.510)
World Almanac, 1947- 15,690,000 (p.748)
미 국 이민귀화국 (INS), 1950 -15,713,638 (Appendix VII, 'Statistics onReligious Affiliation'; Report to U.S.Senate Judiciary Committee, 1950)

정직이의 계산결과 인구가 많이 증가한시대 1933~1936년의 인구증감률로(인구증감률 많을경우로 가정하고 사망자를 계산할경우) 볼경우 2차대전에서 유대인이 사망했을 숫자를 역산하면 795,830명 아우슈비츠에말들을 종합해서 추론해보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한 사람은 6만명 이하 일것으로 보입니다. 히틀러와 로스차일드의 감옥에서의 만남을 살펴보면 독일인은 유대인에게 관대했네요.. 사망은 전염병 + 질병사망 + 상해사망모두 포함했을경우 맥시멈임... 2차대전 이전 1929~1933년은인구감소추세

 

Jews in Europe - 1938: 8,039,608 - 1948: 9,372,668

2000년, 유태계인 미국의 노먼 핑클슈타인(Norman G. Finkelstein)교수는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모든 논란을 이렇게 요약했다:

“히 틀러의 유태인 대학살과 관련된 책들의 대부분은 사료(史料)로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실로 홀로코스트 연구는 뻔한 거짓말아니면 넌센스로 채워져 있다... 홀로코스트 업계가 매일같이 만들어 내는 얘기들의 비상식적 본질을 감안할 때, 신기한 것은 거의모든 사람들이 별 의심 없이 그런 얘기들을 믿는다는 사실이다.” (The Holocaust Industry, 2000)

 

발진티푸스(Epidemic typhus)


 

리케치아 프로와제키(Rickettsiaprowazekii) 감염에 의한 급성 열성 질환

신고범위 : 환자, 의사환자
신고시기 : 7일 이내 신고
신고를 위한 진단기준
◈ 환 자 : 발진티푸스에 합당한 임상적 특징을 나타내면서, 다음 검사방법 등에 의해 해당 병원체 감염이
확인된 자
- 회복기 혈청의 항체가가 급성기에 비하여 4배 이상 증가
- 검체(혈액, 몸이등)에서 유전자 검출
◈ 의사환자 : 임상적 특징 및 역학적 연관성을 감안하여 발진티푸스임이 의심되나 검사방법에의해 해당
병원체 감염이 확인되지 아니한 자

30.1 역학적 특징
◈ 세계현황
  - 과거 20년간거의 사라졌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지고 대유행은 주로 아프리카(이디오피아, 르완다,
버룬디)에서 발생
     - 사람에서 폭발적인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리케치아 질환으로 사망률과 이환율이높음
- 호발시기 : 이 증식에 좋은 조건인 장마철이나겨울철에 호발
◈ 국내현황 : 1960년대 이후 발생 보고 없음
◈ 전파경로 : 이(Pediculushumanus corporis)를 매개로 한 사람간 전파가 주이나, 이의 대변 속으로
배설된 균이 구강점막이나 결막을 통해 또는 비말감염으로 전파됨

30.2 임상적 소견
◈ 잠복기 : 6일~15일(평균 7일)
◈ 임상증상
- 심한 두통, 발열, 오한, 발한, 기침, 근육통이 갑자기 발생함
- 이에 물린 자리의 가려움증을 호소하며 긁은 상처가 있으나 가피는 없음
- 발 진 : 짙은 반점 형태로 발병 4일에서 6일경 나타나며 몸통과 겨드랑이에서 시작하여 사지로 퍼지고
손바닥이나 발바닥에는 발생하지 않음
- 치료를 안하는 경우 약 2주 후 빠르게열이 내리며 상태가 호전됨
◈ 사망률 : 1~20%, 특히60세 이상의 고령환자에서 높음

30.3 검사실 소견
◈ 진 단
- 미세간접형광항체법 등으로 급성기와 회복기 혈청에서 항체가가 4배 이상 상승
- 미세형광항체법으로 IgM 항체가가 1:10 이상
- 임상검체에서 중합효소연쇄반응법으로 R.prowazekii 유전자 검출
◈ Weil-Felix test : OX-19에 1:320 이상의 항체가를 보이나 비특이적임

30.4 치료
◈ 발열이 소실된 후 1일 더 치료
- 독시사이클린 100 mg, 1일 2회 복용
- 테트라사이클린 25~50 mg/kg/일, 4회 분복
- 클로람페니콜 50 mg/kg/일, 4회 분복

30.5 환자 및 접촉자 관리
◈ 환자관리
- 격리 : 환자의 이를 제거하면 격리 필요없음 (환자의 옷, 거처,가구내 상대 접촉자 등으로부터 구충)
- 환자나 접촉자의 침구, 의복 등에 내성없는 살충제로 구충
◈ 접촉자관리
  - 발병여부 관찰: 발진티푸스 환자가 발생한 장소에 같이 있었던 사람,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2주간
발병여부에 대한 감시가 필요함


30.6 예 방
◈ 환경 개선(이의 박멸)이 중요

 

한마디로 2차세계대전 이후 발진티푸스는 완전히사라졌으며, 전염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염병이라는 것은 수용소 내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며, 이를 통해 대량 사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병의 유행은 전쟁과 관계가 깊어 전쟁티푸스 또는 기근열·형무소열 등의 별명이 있다. 그것은 이 병의 매개곤충인 ‘이’가 의류나 몸이 더러울 때 발생하기 쉬우므로 군대나 형무소,전쟁터 등 환경이 나쁜 곳에서 크게 유행하였기 때문이었다.

 

1918년에는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의 인플루엔자가 세계를 강타했다. 당시 사망자 수는 2000만명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인 1500만명보다 많은 것이다.

제1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에서 발생한 환자의 수는 2500만 명이나 되었고, 영국과 기타 유럽에서도 전쟁·기근 때문에 이 병이대유행했던 기록이 있으며, 일본에서도 제2 세계대전 전후에 유행했었다.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유럽·아시아의 일부지역에만 존재할 뿐이다.

이렇듯 질병이란 것은 전쟁보다 더 위험하며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든다.

교황은 왜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독가스로인해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가 펴고 있는 이론으로 따진다면 하루에도 수천,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어나갔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이 교황은피해갔을까..

 

우리가 잘 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저항 운동에 참여했고, 아우슈비츠에 잡혀 있었던적도 있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저항 운동을 했다고 했는데 나는 다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우슈비츠에 갖혀 있던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들만 그런 고생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25퍼센트는 정치범이었고, 75퍼센트는 일반 잡범이었다.더구나 수용소의 사람들에게 잔악한 행동을 한 것은 카포스 같은 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죄수중에서 뽑힌 반장, 조장 같은 개념이었고, 대부분 독일인이아니었다. 또한 수용소마다 간단한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발진티푸스때문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국제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에 다하우 수용소 인원 중에서 사망한사람은 2만 5천 613 명이었는데, 이중에 2만 명 정도는 전쟁의 마지막 7개월 동안에 연합국의 폭격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또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지클론 B 가스로 수백만의 유대인을학살했다고 알고 있다. 이는 나치가 계획적으로 인종을 말살하기 위함이라고 우리는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400평방미터의 아우슈비츠 독가스 실에 한 번에 3천 명씩 넣어, 하루에 2만 4천 명을죽였으며, 벨제크에서는 25평방미터, 천장이 1.9미터 되는 방에 한 번에 7~8백 명을 집어넣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5평방미터라면 일반적으로 약간 큰 침실 정도의 크기이다.

이러한 연합국의 말에 의하면 1평방미터에 30명을넣었다는 이야기인데, 캐비넷이나 공중전화 부스 안에 30명을넣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승리자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그들은 독가스에 의해서 죽었던 것이 아니라, 압사 당했거나 산소 부족으로 죽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지클론 가스는 발화성이 강하고 접착성이 강하다. 과학 상식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사람이라면 이것은 일반 상식이다. 또한 한 번 살포하면 21시간이지나고 들어가야 안전하다. 이것은 21시간이 지나야 시체를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하루에 2만4천을 죽이고, 독일군이 시체들의 입을 벌려 금이빨과 입 속에 감춘 다이아몬드를 뽑았다면, 하루에 2만 4천 명의이빨을 검사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 죽으면 뻣뻣해져서 입을 벌리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공식 발표에 의하면 8명의 독일인이 불도 없는 시멘트 방에서 원시적인 연장을 갖고 그 이빨들을 검사했다는말이 된다.

역사책에 기록된 자료들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번에 3천 명씩이 아니라, 설사 한 번에 2만 4천 명을 모두 다 넣었다고 치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루에 2만 4천 명의 수용자들을 지클론 가스로죽이고, 21시간이 지난 다음에 8명이 들어가서 3시간 동안 2만 4천명의 이빨을 검사해서 금이빨을 모두 뽑아내고, 곧바로 또 2만 4천명을 넣어서 죽이고 21시간 후에 들어가서 3시간 동안 2만 4천명의금이빨을 8명이 뽑아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아우슈비츠 역사가들은 화장로 속에 시체를 넣기 전에 그 시체들의 항문과 여자들의 질 속에 숨겨둔 다이아몬드나 보물이 있는지조사했다고 한다. 이는 교과서와 역사책에 나오는 공식적인 기록이고, 이런책들을 보면서 우리는 (승리자들의 계획대로) 나치의 잔혹함에또 다시 치를 떨 게 되는 것이다.

 

전세계가 사용하는 위키백과 사이트에서 유대인 희생자 수를 100만으로 적었다. 밑에 내용과 같다.

 

경과

 

수감자들은 매우 좁은 크기의 방에서 생활했다. 이 방은 너무나 좁아서 일어서 있을 수가 없었다. 최초의 수용자들이 아우슈비츠에 온 것은 1940년 6월로,폴란드 양심수 728명이 첫 수용자들이었다. 이후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폴란드인 수용자들은 약 15만명이며, 이중 7만 5천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41년 9월소련군 포로와 유대인 수용자들이 처음으로 독가스실에서 학살당한 만행이 아우슈비츠에서의 첫 학살이었다. 독가스실에서는 한 번에 약 2,000여명의 수용자가 학살당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그리고 어린이들이었는데, 수용소 도착즉시 선별되어보내졌다. 독가스실은 대개 샤워실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나치는학살 피해자들에게 샤워를 하라고 하여 옷을 벗게 한 뒤, 가스실에 보내어 학살하였다. 사용된 독가스는 효과가 빨리나타나는 치클론 B였는데, 제조사인 훽스트사는 전후에나치협력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학살 피해자들의 시체는 시체 소각로에서 대량으로 불태워졌는데 하루에 약 1,500~2,000구의시체가 소각되었고, 이들의 옷과 신발은 분류되었다. 또한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었다. 이러한 나치의 만행은 68혁명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논의되면서 현재 독일 역사교과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C%9A%B0%EC%8A%88%EB%B9%84%EC%B8%A0_%EC%88%98%EC%9A%A9%EC%86%8C

여기서 또 짚어 넘어가자.

그들은 독가스로 살해한 후에 이러한 검사를 했다고 하는데, 지클론 B 독가스로 살해당한 사람의 시체는 인분이 흘러나오고 피가 범벅이 된다. 그런상황 속에서 6백만 개의 항문과 4백만 개의 질 속을 샅샅이더듬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냈다는 말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 의하면8명이 세 시간동안에 2만 4천의 입 속, 2만 4천 개의 항문과 1만 5천~2만 개의 질 속을 뒤져서 보석을 찾아냈다는 말이 된다.

또한 폴리아코프 교수 같은 사람은 독일인이 그 시체로 비료를 만들고, 비누를 만들었다고한다. 독가스 학살과 시체로 만든 비누, 시체에 손을 넣어찾아낸 귀금속 이야기 뿐만 아니라, 살해된 유태인의 숫자 역시 조작이다.

리쿠에 신부는 1천 5백만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고하고, 라루스 사전에는 2천만 명의 유대인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했다고 하는데, 2천만 명이면 당시 전 세계의 유대인 숫자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내 생각에는 독일의 잔혹함을 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같은 거짓말들이 너무 심하게 과장된 나머지 이런 헛점을보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안네 프랑크(Anne Frank)----->

그 녀가 쓴 일기로 인해 안네 프랑크는 아마도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유태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수 많은다른 유태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안네와 그녀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1944년 9월, 15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프랑크는 몇 주 뒤 Bergen-Belsen수용소로 옮겨졌고 이 곳에서 1945년 3월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아우슈비츠에 남아 있던 중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오토 프랑크는수용소 병원에입원 중 병상에서 아우슈비츠에 진주한 소련군을 맞았다. 그는 1980년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만 약독일의 국가정책이 유태인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사가 비극임은 분명하나 그들의 이야기는 독일이 의도적으로 유태인을 말살하려 했다는 주장과 일치하지않는다. 전쟁 전 유태인에 대한 독일정부의 주안정책은 국외이민이었고 전쟁 발발 직후에는 게토에, 그리고 1943년 이후로는강제수용소에 수용하는 것이었을 뿐 유태인의 인종적 말살을 노린 genocide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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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실들을 믿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적 자료들에 의거한 것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요?  내일은 또 다른 증빙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궁금해 할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거대한 음모를 지금까지 감쪽같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어찌 속여 왔는가?”

바로 "정보의 접근 성이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입 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정보에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었고 지금도 역시 이러한 정보들의 주력 신문과 방송 사에 노출이 되지않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오늘날과 같이 정보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도구인 인터넷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의 유태자본들 에게는일종의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매우 손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태 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폐단 입니다.

돈 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돈을 작금 유태인들이계속 찍어내고 있으며 금(Gold)과 같은 현물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음이 또한 매우 불합리한 것이지요. 돈(Money=Finace) 이라는 것은 현물경제(Spot Economy)과 막 바꿀 수 있는 말 그대로 재화로써의 가치가입증이 된 만큼만 찍어 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들 유태자본들은 현물 없이 마구 찍어내니 지구 상에 너무 많은 돈이 도는것이고 급기야는 인플레이트(Inflate) 현상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공황상태를 규칙적으로 반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플레이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미국의 유태자본이 내세운 카드가 다름아닌 세계 전쟁(Global War) 이라는 것은머리를 장식이 아닌 그야말로 인간의 중앙처리 연산장치로 들고 다니는 분들 이라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나아가서, 이 들 두 번의 세계 전쟁으로 인해서 가장 많은 반사 이익을 얻은 민족이 바로 유태자본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전쟁을 치르는 두 당사자들을 상대로, 철강, 기름 그리고 달러를 공급하면서 전쟁을 부추긴 것이지요.  모두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패악 입니다. 유태인....

 

‘THE TRILLION DOLLAR LIE ?THE HOLOCAUST’ ? PHOENIX JOURNAL #39-CHAPTER 7 (Excerpt)

REC #1 HATONN
TUE., NOVEMBER 5, 1991 7:55 A.M. YEAR 5, DAY 081
TUESDAY, NOVEMBER 5, 1991
JEWDOM
Now that we have established that all people, except the Zion­ists, are “Jews”, I hope you will stand by before you have a to­tal breakdown. Many of you are also Semites?but the Zionists and self-styled so-called Jews, ARE NOT. Once again, you are going to have to FACE FACTS for FACTS ARE FACTS and pronouncing them otherwise means zilch.
LET’S LOOK BACK AT “JESUS”
I am not going to repeat and repeat that which has already been given in detail, but I will briefly remind you of prior writings which have come forth from scholars and historians, most espe­cially Benjamin H. Freedman in his writings to Dr. David Gold­stein, LL.D., dated Octo­ber 10, 1954:
....Without any fear of contradiction based upon fact the most competent and best qualified authorities all agree today that Je­sus Christ (Emmanuel) was not a so-called or self-styled “Jew”. They now confirm‍? that during His lifetime Jesus was known as a “Judean” and not as a “Jew”, and that Jesus referred to Himself as a “Judean” and never as a “Jew”. Dur­ing His lifetime here on earth Jesus was referred to by contemporary historians as a “Judean” and not as a “Jew”. Contemporary theologians of Jesus whose competence to pass upon this sub­ject cannot be challenged by anyone today also referred to Je­sus during His lifetime here on earth as a “Judean” and not as a “Jew”.
Neither did the inscription on the cross nor the attitude of “King of the Jews” ever appear or was ever entertained by anyone in the time period of Pontius Pilate or Emmanuel.
SUIT A NEED
I will remind you “...officially or personally the inhabitants of Judea were “Judeans” to Pon­tius Pi­late and not so-called “Jews” as they have been styled since the 18th Century.”
“JEW” APPEARED ONLY AFTER THE 1700’s

“....As you know, my dear Dr. Goldstein, the best known 18th century editions of the New Testament in English are the Rheims (Douai) Edition and the King James Authorized Edition. The Rheims (Douai)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into English was first printed in 1582 but the word “Jew” did NOT AP­PEAR IN IT. The King James Authorized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into En­glish was begun in 1604 and first pub­lished in 1611. THE WORD “JEW” DID NOT APPEAR IN IT EITHER. THE WORD “JEW” APPEARED IN BOTH THESE WELL KNOWN EDITIONS IN THEIR 18TH CEN­TURY **REVISED** VERSION FOR THE **FIRST TIME**”
EXPLANATION OF THE USE OF “JEW”
“...Countless copies of the revised 18th century editions of the Rheims (Douai) and the King James translations of the New Testament into English were distributed to the clergy and the laity through­out the English speaking world. They did not know the history of the origin of the English word “Jew” nor did they care. They accepted the English word “Jew” as the only and as the accepted form of the Latin “Iudaeus” and the Greek “Ioudaios”. How could they be ex­pected to have known oth­erwise? The answer is they could not and they did not. It was a NEW English word to them.”
SO HOW DID “THEY” GET BY WITH IT?
Easy: When (and IF) you studied Latin in your school days you were taught that the letter “I” in Latin when used as the first letter in a word is pronounced like the letter “Y” in English when it is the first letter in words like “yes”, “you”, “youth” and “yacht”. The “I” in “Iudaeus” is pro­nounced like the “Y” in “yes” and “You”, “youth, and “yacht” in English. Are you beginning to see that now that you are a “Jew” you are simply “YOU”? Yes indeed, I certainly most surely do recognize that you feel badly “had”.
HANDY FOR THE ZIONISTS/KHAZARS
The present pronunciation of the word “Jew” in modern English is a development of recent times. In the English language of to­day the “J” in “Jew” is pronounced like the “J” in the En­glish word “justice”, “jolly”, and “jump”?which does in no wise make it “correct”. THIS IS THE CASE onLY SINCE THE 18TH CENTURY. Prior to the 18th century the “J” in “Jew” was pronounced exactly like the “Y” in the English “yes”, “you”, “youth”, and “yacht”. Until the 18th century and perhaps even “later” than the 18th century the word “Jews” in English was pronounced like “hews” or “youse”. The NEW pronunciation was established by the Khazarian Zionists to fit into their particular needs of establishing a non-ex­istent foundation for the NEW WORLD OR­DER. THE PRESENT WORD “JEW” WAS ES­TABLISHED/ACQUIRED onLY AFTER THE 18TH CENTURY.
ISRAEL ESTABLISHED
Even more briefly?ISRAEL WAS ESTABLISHED BY THE UNITED NATIONS CONSIST­ING OF THE SOVIET UNION,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FRANCE AND CHINA. IN 1948! This hardly seems an “ancient” holy mandate to steal land and slaughter people who lived upon that land for thousands of years. It was simply the act of the U.S., Great Britain and the Soviets that the State of Israel was established and PRO­NOUNCED INTO EXISTENCE.
CARETAKERS OF ISRAEL
Since the major role was played by the Elite Khazars who had moved into the U.S. following the Bolshevik Revolution, it (Israel) became the orphan-adopted “child” of the U.S. The word “israel” is a very simple small-letter word meaning “chosen”. “I”srael means NOTH­ING. It means no more than if you decided to call the United States?”Horse”. Believe me, dear ones, in the rest of the world the U.S. is often referred to as such, i.e., “Horse’s Ass-ettes” and more specifically?”Little Israel”. By the way?the original word “Jew” is still pro­nounced “you” in al­most all other countries.
Emmanuel was referred to as a “iewe” (“hew-wee”) in the sin­gular and as “One of the `iewes’”. That was the 14th century version of the Latin “Iudaeus” and was pronounced as “hew-weeze” in the plural, and “iewe” in the singular. By the way His name was Esu Em­manuel?often called Isa or Iisa which is pronounced as “E”su.
MORE HISTORY ABOUT “JEW”
If the generally accepted understanding today of the English “Jew” and “Judean” conveyed the identical implications, infer­ences and innuendoes as both rightly should, it would make no dif­ference which of these two words was used when referring to Emmanuel (Jesus-”Yeesus”) in that book called the New Testa­ment or elsewhere. But the implications, inferences, and innu­endoes today conveyed by these two words are as different as black is from white. The word “Jew” today is never re­garded as a synonym for “Judean” nor is “Judean” regarded as a syn­onym for “Jew”.
As I have explained, when the word “Jew” was first introduced into the English language in the 18th century its one and only implication, inference and innuendo was quite possibly “Judean”. However, during the 18th, 19th and 20th centuries a well-organized and well-fi­nanced international “pressure group” created a so-called “secondary meaning” for the word “Jew” among the English-speaking peoples of the world. This so-called “secondary meaning” for the word “Jew” bears NO RE­LATION WHATSOEVER TO THE 18TH CEN­TURY ORIGINAL CONNOTATION OF THE WORD. IT IS A MISREPRESENTATION.
The “secondary meaning” of the word “Jew” today bears a mis­representation and as little rela­tion to its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as the “secondary meaning” today for the word “camel” bears to the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of the word “camel” or the “secondary meaning” today for the word “ivory” bears to the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of the word “ivory”. The “secondary meaning” today for the word “camel” is a cigarette by that name but its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is a desert animal by that ancient name. The “secondary meaning” of the word “ivory” today is a piece of soap but its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is the tusk of a male ele­phant.
The “secondary meanings” of words often become the generally “accepted” meanings of words formerly having entirely differ­ent meanings. This is accomplished by the expenditure of great amounts of money for well-planned publicity. Today if you ask for a “camel” someone will hand you a cigarette by that name. Today if you ask for a piece of “ivory” someone will hand you a piece of soap by that name. I doubt you will ever receive either a desert animal or a male elephant tusk. Perhaps this illustrates the extent to which these “secondary meanings” are able to eclipse the original and possibly cor­rect meanings of words in the MINDS OF THE GENERAL PUBLIC. The “secondary meaning” for the word “Jew” today has totally eclipsed the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of the word and no longer even bears the correct pronunciation?that is NOT AN ACCIDENT. THIS WAS A TERM TAKEN (STOLEN, AS IS THE USUAL PROCEDURE OF THESE onES) BY THE KHAZARIAN ZIONISTS TO SUIT A NEED FOR FUL­FILLING DECEPTION OF A POP­ULATION WHEREBY THEY CAN CONTROL YOU THROUGH THAT DECEIT.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has recognized the “secondary meaning” of many words. The highest court in the land has es­tablished as basic law that “secondary meanings” CAN ac­quire priority rights to the use of any dictionary word. Well-planned and well-financed world-wide publicity through every avail­able controlled media by well-organized groups of so-called or self-styled “Jews” for three centuries has created a “secondary meaning” for the word “Jew” which HAS COM­PLETELY “BLACKED OUT” THE ORIGINAL AND COR­RECT MEANING OF THE WORD. THERE IS NO DOUBT ABOUT IT !
There is not a person in the whole English-speaking world today who regards a “Jew” as a “Judean” in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That was the correct and only meaning in the 18th cen­tury. The generally accepted “secondary meaning” of the word “Jew” today, with practi­cally no exceptions, is made up of four almost universally-believed theories. These four theo­ries are that a so-called or self-styled “Jew” is (1) a person who today professes the form of religious wor­ship known as “Judaism”, (2) a person who claims to belong to a racial group as­sociated with the ancient “Semites” (but are NOT), (3) a person directly the descendant of an ancient nation which thrived in Palestine in Bible history and (4) a person blessed by Divine intentional de­sign with certain superior cultural characteristics denied to other racial, religious or national groups, all rolled into one.
Since my thrust this day is NOT to give you a religious lecture but only to identify terminol­ogy, I will leave this portion of ex­planation.
I trust it is clear to you that the whole truth has been greatly tampered with and you are now almost inclusively “people of the lie”. You accept that which is told to you without ques­tion and march to the drummer’s beat as instructed?RIGHT OR WRONG?for if a thing is seen and heard enough, it becomes the accepted.
...
Found at:
http://www.fourwinds10.com/siterun_data/bellringers_corner/vital_articles/news.php?q=1298297251

 

1. WHAT PROOF EXISTS THAT THE NAZISPRACTICED GENOCIDE OR DELIBERATELY KILLED SIX MILLION JEWS?
1. 나치가 대량학살 또는 유대인 6백만을 죽였다는 증거가 존재 하는가?

None. The only evidence is the contradictory testimony of individual"survivors", and no "survivor" claims actually to havewitnessed any gassing. There is no hard evidence whatsoever. No mounds ofashes, no piles of clothes, no crematoria capable of doing the job, no humansoap, no lampshades made out of human skin, no records, no demographicstatistics.

On the other hand there exists extensive evidence of a forensic, demographic,analytical, doc-umentary, anecdotal, and comparative nature which clearlyproves the impossibility of such a figure as six million Jewish dead, anexaggeration of possibly 1000%.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남은개인들의 서로 상반된 증언이 있고, 죽은 자들을 보면서 어떤 가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만 있다.

결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사체를 소각해서) 쌓여있는 재도 없었고, 모아놓은 옷도 없었고, 화장을 할 수있는 시설도 없었고, 인간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도 없고, 사람의피부로 만든 램프 갓도 없고, 어떠한 기록도, 사람에 대한통계도 없다.

반면에 과학적 변론과, 인구학적인 분석, 기록물들, 수많은 일화등 엄청난 양의 증거가 있다. 600만 이라는 숫자의유태인들이 죽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명백한 증거가 되는 비교 사실은 이런 과장된 내용이 1000% 거짓임을보여준다.

2. HOW DID GERMAN CONCENTRATION CAMPS DIFFER FROM AMERICAN RELOCATION CAMPSWHICH INTERNED JAPANESE AND GERMAN-AMERICANS DURING WORLD WAR TWO?
2.독일의 집단 수용소와 2차 세계대전중 미국에서 일본인들과 독일계 미국인들을 의도적으로 격리 수용한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Except for the name, the only difference was that the Germans interned personswho were a real or suspected threat to the German war effort, whereas theAmericans interned persons on the basis of their race or national originalone.

명칭 이외에 단지 다른 것이라면 독일의 수용소 용도는 독일의 전쟁집중에 위협할요소가 있거나 위협적인 인물들을 강제수용 시킨 것이다. 반면 미국은 민족과 국가가 어디냐를 근거로 해서사람들을 강제 격리 수용시켰다.

3. WHY DID THE GERMAN AUTHORITIES INTERN JEWS IN THE CONCENTRATION CAMPS?
3. 왜 독일 당국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시켰나?

Because the Germans considered the Jews a direct threat to their nationalsovereignty and survival, correctly as it turned out. Jews were overwhelminglyrepresented in Germany in Communist subversion during the Weimar period. On aper capita basis, Jews were highly overrepresented in government, commercial,and media positions. However, ALL suspected security risks, not just Jews, werein danger of internment once the war broke out.

이유는 독일이 보기에 유대인은 독일의 종주권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기때문이었으며 명백한 사실로도 드러났다. 유대인들은 압도적으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대표했으며 공산주의전복을 주장했다.

유대인 개인 개인들은 정부, 사회, 미디어의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의 안전에 위험이 되었기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자 강제 격리 되었던 것이다.

On March 24th, 1933, international Jewry declared war on Germany and ordered aworld-wide boycott of German goods simply because the German government hadremoved Jews from influential positions and transferred power back to theGerman people.

The boycott order and the Jewish war against Germany were reported in the worldprint and broadcast media of the time. False stories of German "deathcamps" were in fact circulated even before the outbreak of World War Two.Therefore the German view of the Jewish people as enemy aliens would seem tohave been fully justified.

1933년 3월24일 국제 유대사회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 걸쳐 독일물건 불매할 것을 정했다. 이런 운동의 이유는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을 끌어내리고 그 권력을독일인들에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불매운동 전개와 유대가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세계 신문들이보도했고 방송이 되었다.

사실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는 2차 세게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돌아다니던 말이다. 따라서 독일이 유대인들을 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은 지극히 정당화 된 것이었다 보여 진다.

4. DID SIMON WIESENTHAL ONCE ADMIT THAT THERE WERE NEVER ANY DEATH CAMPS ONGERMAN SOIL?
4.시몬 비젠탈은(SIMON WIESENTHAL) 독일땅에 죽음의 캠프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Yes. In Books and Bookmen, April 1975 issue. He claims the gassing of all theJews took place in Poland.
그렇지 않다. 1975년 4월에 출판된 *Books and Bookmen* 에서 그는 폴란드에서모든 유대인들을 가스로 죽였다고 했다.

5. DACHAU IS IN GERMANY. IF EVEN SIMON WIESENTHAL NOW ADMITS IT WAS NOT A DEATHCAMP, WHY DO THOUSANDS OF AMERICAN VETERANS SAY IT WAS?
5.다카우DACHAU(주: 독일 Munchen뮨션에 있는 수용소)는 독일에 있다. 시몬비텐탈은 지금은 비록 다카우가 죽음의 캠프가아니었다라고 하는데 왜 수 천명의 미국 재향군인들은 다카우를 죽음의 캠프라 말하나?

Because after the Allies captured Dachau (and incidentally murdered dozens ofthe former staff without trial), thousands of GI s were led through the campand shown buildings alleged to be gas chambers. This story was later quietlyexpunged from official Holocaust lore because it became too difficult tomaintain in the face of known fact and because Dachau was in the Alliedoccupation zone where access to the camp was too easy and unrestricted.
왜냐하면 연합군이 다카우를 접수하고 나서(그리고 고의적으로 다카우 전임자 수십명들을 법적인 절차도 안 거치고 죽였다), 미국 하사관들이캠프를 보여 주었고 가스실이라 의심되는 건물을 보여 주었다.

공식적인 홀로코스트 일화에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조용히 삭제되었다. 이유는 연합군이 이미차지하고 있는 지역인 이곳에 접근하는 것이 너무 쉽고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곳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En passant, the brief lifespan of the "Dachau death camp" versiongave rise to the first critical examination and questioning of the Holocaustmyth by historians and by some Allied veterans who noticed discrepancies inwhat they had seen and what they read in official accounts. It would be manyyears, though, before this early Holocaust Revisionism gained momentum.
앙 파상(En passant)의‘다카우 죽음의 캠프’ 라는 간략한 내용의 책이 처음으로 철저한 조사를 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신화에대해 역사가와 몇몇 연합군 재향군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봤던 수용소와 읽었던 공식적인 기록이 상반되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지금과 같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이교정되어서 힘을 얻기 한참 전의 일이다.

6. AUSCHWITZ IS IN POLAND, NOT GERMANY. IS THERE ANY PROOF THAT GAS CHAMBERSFOR THE PURPOSE OF KILLING PEOPLE EXISTED AT AUSCHWITZ?
6.독일이 아닌 폴란드에 있는 아유슈비츠에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가스실이존재 한다는 증거가 있나?

No. The "gas chamber" exhibited to tourists at Auschwitz could notpossibly have been used to carry out executions; it is far too small and it isnot even airtight. In the 1980s, American expert Fred Leuchter, who builds gaschambers for American penal systems, took scrapings from the walls of theAuschwitz "gas chamber" for chemical analysis. He found no cyanideresidue at all. The Auschwitz exhibit is a fake, pure and simple, a flimsytourist trap.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가스실은 가스를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곳이다.공간이 너무 비좁고 공기가 차단된 곳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인 전문가 프레드 로흐터(Fred Leuchter)가 미국 패널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화학적인 조사를 위해서 아우슈비츠 가스실 벽을 긁어서 가져갔다. 미국인 패널들인조사위원들은 아무런 청산가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거짓이고 관광객들을위해 만든 단순하고 얄팍한 속임수다.

7. IF AUSCHWITZ WASN'T A DEATH CAMP, WHAT WAS ITS TRUE PURPOSE?
7. 만약 아우슈비츠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라면 이곳의 진짜 사용 목적은 무엇이었나?

It was a large-scale manufacturing complex. Synthetic rubber (Buna) was madethere, and its inmate s were used as a workforce, in the same way in whichinmate labor is increasingly being used in correctional systems throughout theUnited States today.
이곳은 대규모 제조 공장이었다. 화학합성 고무(Buna)를 만들었고 노동인력은 수감자들이었다. 같은논리로 미국에서도 현재 수감 인력들이 점점 늘어나면 교정 또는 징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같다.

(참고- 중국은 현재 3천만 명의 수감자가 무임금 유노동을 하고 있다)

8. WHAT ABOUT THE INFAMOUS ZYKLON-B GAS?
8. 악명 높은 지클론-비(Zyklon-B) 가스는 뭐냐?

Zyklon-B is a commercially manufactured compound of hydrocyanic gas. It has a numberof widespread industrial uses, including the fumigation of lice-infestedclothing, the purpose for which it was applied at Auschwitz. Zyklon-B is stillmanufactured worldwide and is commonly used and available today.
지클론 비는 상업적인 만들어진 시안화수소 가스 합성체다. 수 많은 공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가스를 옷에 훈증해서 기생충이나 해충들을 박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사용되었다. 지클론 비는 아직까지 제조되는물질이며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지금도 구매 할 수 있다.

(참고- 공장을 가동하는 사람들의말을 빌리면 현재 쉽게 구매 할 수 있다고 한다)

9. IF AUSCHWITZ WAS NOT AN EXTERMINATION CAMP, WHY DID FORMER COMMANDANT RUDOLFHOESS CONFESS THAT IT WAS?
9. 만약 아우슈비츠가 살인 캠프가 아니라면, 수용소 소장 이었던 루돌프 회스
(RUDOLF HOESS)는 왜 살인 가스로 유대인들을 죽였다고 자백했나?

Hoess was captured by the Russians and Polish Communists and brutally tortured.He signed his confession, the SOLE SOURCE for the figure of six million deadJews, in English, a language he could not read. Some pages of the originaldoc-ument are literally stained with Hoess' blood. Hoess was then convenientlyexecuted so he could not be cross examined.
회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에게 붙잡혔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회스는 600만 유대인들을 죽였다는 단 하나의 사항에 자백했고 (문서에)싸인 했지만 문서는 회스가 읽지 못하는 영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오리지날 문서들의 몇몇 페이지에는 글자 그대로 ‘회스의 혈흔’이 남아 있다.회스는 간단하게 처형되었다. 연합군에 의한 시각에서 또는 다를 각도로 신문을 받아 보지못했다.

10. HOW LONG DOES IT TAKE FULLY TO VENTILATE AN AREA FUMIGATED WITH ZYKLON-B?
10. 지클로-비가 사용된 공간을 환기시켜서 사람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About twenty hours. The whole procedure is extremely involved and technical.Gas masks have to be used and well trained technicians only are employed.
약 20시간이 걸린다. 전체 과정은 극도로 조심스런 기술을 요한다. 가스 마스크를 사용해야되고 숙달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

11. RUDOLF HOESS SAID IN HIS CONFESSION THAT HIS MEN WOULD ENTER THE GASCHAMBER TEN MINUTES AFTER THE JEWS HAD DIED AND REMOVE THE BODIES. HOW DO YOUEXPLAIN THIS?
11.루돌프 회스는 그의 자백에서 가스를 사용한 뒤10분 만에 처리요원들이 방에 들어가서 죽음 유대인들의 사체를 끌어냈다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It can't be explained, because it could not have happened like that. Had theGermans done this they would have suffered the same fate as the allegedlyexterminated Jews.
설명이 불가능 하다. 이유는 그런식의 일은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독일군들이 그렇게 행동 했다면 근거 없는 주장으로 죽음을맞이 했다는 유대인들처럼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이 되어 똑같이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12. HOESS SAID IN HIS CONFESSION THAT HIS MEN WOULD SMOKE CIGARETTES AS THEYPULLED DEAD JEWS OUT OF CHAMBERS WHICH TEN MINUTES BEFORE HAD BEEN FILLED WITHGAS. ISN'T ZYKLON-B EXPLOSIVE?
12. 회스는 그의 자백 기록에서 그의 요원들은 가스실에서 시체를 끌어내면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가스가가득한 방에 10분 뒤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 지클로-비는폭발하는 걸로 아는데?

Highly so. The Hoess confession is obviously false and the six million figureas well.
폭발위험이 매우 크다. 회스의자백은 명백히 조작된 것이고 6백만이라는 사항 역시 마찬가지다.

13. HOW COULD SUCH A MASS MURDER PROGRAM HAVE BEEN KEPT SECRET FROM JEWS WHOWERE SCHEDULED FOR EXECUTION? HOW COULD THE POPE, THE VATICAN, THEINTERNATIONAL RED CROSS, AND ALLIED MILITARY INTELLIGENCE NOT KNOW?
13. 어떻게 그런 집단 살인에 대한 계획내용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조차 비밀로 유지되어 오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바티칸 교황청, 국제 적십자 그리고 연합군의 정보기관에서그런 사실들을 모를 수 있었을까?

Given the acknowledged efficiency and penetration of the OSS, British MI5, andSoviet NKVD into the Third Reich, it could not have been kept secret. Nor canone imagine any reason for the Allies, who were fighting to destroy Germany,not to make use of such a potentially powerful propaganda weapon, had therebeen any contemporary evidence at all during the war that such an event wasoccurring.

미국의 OSS (註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 사무국 :Office of StrategicService) 의 침투와 영국의 첨보기관 MI5, 소련의 VKVD(비밀경찰)들이 ‘제3국’(독일을 지칭)에 침투하여 이것이 비밀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을 멸망시키려고 싸웠던 어떠한 연합군의 개인도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파워있는 잠제적인 선전의 무기로써 전쟁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당시 어떤 증거도 없었다는것에 대해서 사용 할 수 없었다.

14. HOW MANY JEWS ACTUALLY DIED IN GERMAN CONCENTRATION CAMPS DURING THEWAR?
14. 독일 집단 수용소용서에서 실제로 몇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나?
About 300,000.
약 삼십만(300,000)명이다.

15. HOW DID THEY DIE?
15.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Mainly from recurring typhus epidemics that ravaged war-torn Europe during theperiod. Typhus is a disease which invariably appears whenever people are jammedtogether for long periods without bathing.

It is carried by lice which infects hair and clothes. Ironically, if theGermans had used more Zyklon-B for disinfectant purposes, more Jews might havesurvived the concentration camps.

Jewish prisoners (as well as many others) also died from starvation and lack ofmedical attention towards the end of the war when virtually all rail and roadtransport had come to a standstill due to the intense Allied bombingcampaign.
대부분 전염병인 발진티프스 발병으로 죽었다.발진티프스는 전쟁으로 상처가 난 유럽에 유행 했었다. 발진티프스는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람들이집단으로 몰려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발병한다. 전염매체는 기생충들인데 머리와 옷에 서식을 한다.

만약 독일이 더 많은 지클로-B를 살균의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더 많은 유대인이 수용소에서살아남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 유대인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의료의도움을 받지 못해서 죽었다. 연합군들의 폭격으로 인해서 도로와 철도가 끊어지면서 도움을 줄 수도 없었기때문이었다.

16. WHAT IS THE DIFFERENCE WHETHER SIX MILLION JEWS OR 300,000 DIED?
16. 숫자상에서 6백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와 삼십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의 차이는 얼마인가?

5,700,00. The key question is whether or not there was a deliberate, systematicattempt on the part of the Third Reich to exterminate the Jews of Europe. Theevidence clearly shows that there was not, and the focus of world attention nowneeds to shift to the identity, the activities, and the financial and politicalmotivations of those who have inflicted on all humanity for the past fiftyyears the grotesque, slanderous, and evil lie that there was a"Holocaust".
5,700,000(오백칠십만)명이다
질문의 요지는 제3국(독일)이 의도적고 계획적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을 근절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었냐 아니냐다. 증거들은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의 관심은 ‘집단 학살’이 있었다 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의 정체성과 그런 행동들 그리고 그들의 재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들쪽으로 옮겨져야 된다. 악마인 그들은 지난 50년간 괴상한중상모략으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거짓으로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17. MANY JEWISH SURVIVORS OF THE "DEATH CAMPS" SAY THEY SAW BODIESBEING PILED UP IN PITS AND BURNED. HOW MUCH GASOLINE WOULD HAVE BEEN USED TOPERFORM THIS ACT?
17. 살아남은 많은 유대인들은 구덩이에 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는 걸 보았고 불을 태웠다고 했다. 그렇게불태우는데 얼마나 많은 개솔린을 사용했나?

A lot more than the Germans had access to or could have afforded to waste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at's for sure.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을 했거나 소모시킬 수 있었다. 확실하다
(주- 질문과 답이 엉뚱한 이 부분은작성자가 실수도 다른 말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임).

18. CAN BODIES BE BURNED IN PITS?
18. (노천)구덩이에서 시체들을 불 태울 수 있는가?

No. It is impossible for human bodies to be totally consumed by flames in thismanner as not enough heat can be generated in open pits. [Note From HaroldCovington: I can personally confirm‍??from my own observations of both Communist and American atrocities in both theAmerican and Rhodesian armed forces that it is impossible completely to destroyhuman bodies en masse with either gasoline, napalm, or in any other way in openpits. The Holocaust "experts" who claim otherwise are eitherparroting what they have been told without bothering to check their facts, or elsethey are lying.]
없다.
화염이 충분하지 않고, 열이 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구덩이에서 사람의 사체를 완전히소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Harold Covington의 기록 : 군대를 가진 공산주의자들과 미국인들의 잔악행위를관찰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가솔린이나 네이팜으로 한 집단의 사람들의 사체들은 한 구덩이 속에 넣어서 완전히 소각시키거나또는 다른 방법으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대량학살 전문가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귀찮아하는 증거 사실들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앵무새가 말하듯이 조잘대는 것이거나 거짓말을하고 있는 것이다.)

19. HOLOCAUST AUTHORS CLAIM THE NAZIS WERE ABLE TO CREMATE BODIES IN ABOUT TENMINUTES. HOW LONG DOES IT TAKE TO INCINERATE A BODY ACCORDING TO PROFESSIONALFUNERAL OPERATORS?
19. 홀로코스트 저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나찌들은 시체들은 소각시켜 재로 만드는데 10분 걸렸다고했는데 화장 장례 전문가에 따르면 시체를 재로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나?
About two hours. 약 2시간걸린다.

20. WHY DID CONCENTRATION CAMPS HAVE CREMATORY OVENS?
20. 왜 집단 수용소엔 소각로가 있나?
To dispose efficiently and sanitarily of the corpses dead from typhus and otherdiseases.
발진티프스나 다른 병으로 죽은 사체들을 효율적이면서 위생적인 처리를 위한 것이다.

21. GIVEN A 100% DUTY CYCLE OF ALL THE KNOWN CREMATORIA IN ALL THE CAMPS INGERMAN-CONTROLLED TERRITORY, WHAT IS THE MAXIMUM NUMBER OF CORPSES WHICH ITWOULD HAVE BEEN POSSIBLE TO INCINERATE DURING THE ENTIRE TIME THE CAMPS WERE INEXISTENCE?
21.독일이 통제하던 영역에 있던 모든 수용소에서 존재 했다고 알려진 모든 소각로를 100%가동해서 수용소가 존재하던 기간 동안 쉬지 않고(하루 24시간) 시체들을 소각한다면 총 몇 구의 시체를 처리 할 수 있나?
About 430,600.
약 430,600구의 사체다.

22. CAN A CREMATORY OVEN BE OPERATED 100% OF THE TIME?
22. 소각로들은 당시 100% 가용을 했었나?

No. 50% of the time is a very generous estimate, or 12 hours per day. Crematoryovens have to be cleaned thoroughly and regularly when in heavyoperation.
아니다.
당시에 있던 것을 최대한 많이 잡아도 50%만 사용 했었거나 하루에 12시간만 사용했다. 소각로들를 험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철저히 청소할 수 밖에 없었다.

23. ON THE AVERAGE, HOW MUCH ASH IS LEFT FROM A CREMATED CORPSE?
23. 사체를 소각하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은 재가 남나?

After the bone is ground down into powder, a separate time-consuming process initself, about a shoe box full.
소각 후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뼈를 완전히 가루로 만든 다음 모으면 신발한 켤레 박스 정도가 된다.

24. IF SIX MILLION PEOPLE WERE INCINERATE D BY THE NAZIS, WHAT HAPPENED TO THEASHES?
24. 만약 나찌가 6백만 명을 태워서 재로 만들었다면 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That remains to be "explained". Six million bodies would produceliterally mountains of ash, tons upon tons. Yet there have been no discoveriesof any huge deposits of ash in the Auschwitz area or anywhere else inEurope.
그게 남아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설명이 되는 것이다. 6백만 명의 사체가 만든 재라면 글자 그대로엄청난 톤수의 재들이 모인 ‘재의 산’이 된다. 아직까지 거대한 양의 재가 아우슈비츠 주변에서 발견되지않고 있고 다른 유럽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다.

25. DO ALLIED WARTIME PHOTOS OF AUSCHWITZ, TAKEN FROM THE AIR, SHOW ANY SIGNSOF CREMATORIA IN FULL BLAST OPERATION?
25. 연합군 공군이 찍은 아우슈비츠 항공사진에 소각로에서 연기나 나오는 어떤 모습이라도 있나?

No. These photographs do not reveal even a trace of the immense amount of smokewhich must have hung constantly over the camp, nor do they show any evidence ofthe alleged open pits where the bodies were burned.
없다. 계속해서 수용소를 감시하면서날아 다녔지만 그 사진들 속에는 많은 양의 연기가 올라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채를태웠다고 하는 노천 구덩이라고 추정되는 곳도 발견되지 않았다.

26. WHAT DID THE INTERNATIONAL RED CROSS HAVE TO SAY ABOUT THE WHOLE"HOLOCAUST" ISSUE?
26. 국제 적십자에선 모든 홀로코스트의 결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나?

A report of the visit of an IRC delegation to Auschwitz in September of 1944pointed out that intern e es were allowed to receive packages and that rumorsof gas chambers could not be verified. The full official report of theInternational Red Cross on the Second World War makes no mention at all of theso-called Holocaust or any of the wilder allegations connected with theso-called Holocaust.
1944년 9월 IRC(국제 적십자사) 방문단의 아우슈비츠 방문해서 작성한 보고서는“수감자들은 소포를 받을 수 있었으며 가스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때 국제적십자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소위 홀로코스트와 광범위한 알려진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에 대한 조사 기록은 전혀 언급되지않았다

Interestingly, in 1996, fifty years after the war's end, the liberal media inAmerica and Europe began running a series of articles claiming that the RedCross was "full of Nazi sympathizers". This charge is entirely bogusand may be chalk ed up to belated Jewish attempts at damage control as theHolocaust myth crumbles steadily in the light of factual examination andcritical analysis.
흥미 있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50년이지난 1996년 미국과 유럽의 자유 매체들은 “나찌를 동조하는 국제 적십자”라고 주장하는 연속 기사를내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날조다. 사실에 입각한 조사와 철저한 분석들이 빛을 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유대인들이만들어낸 홀로코스트의 신화가 점차 무너져가자 다시 부추기기 위한 선동이었다.

27. IS THE DIARY OF ANNE FRANK GENUINE?
27. 안나 프랑크의 일기는 사실인가?

Not as published, no. The evidence compiled by Dietlieb Felderer of Sweden andDr. Robert Faurisson of France proves conclusively that the published versionof the famous diary is a literary hoax. There was a girl named Anne Frank, andsections of the diary appear to be genuine, including several wherein shedescribes adolescent lesbian sexual experiences which were later excised fromthe published text.

아니다.
출판된 내용과는 다르다.
스웨덴의 디츨리에브 펠데레 (Dietlieb Felderer) 와 프랑스의 호베르 파이숑(Robert Faurisson) 박사가 조사해서 밝혀내서 발간한 자료 증거에 의하면 출판된 유명한 일기는 철저히날조된 것이다. 안나 프랑크(Anna Frank)라는 소녀의이름과 일기의 일부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레즈비언 동성연애를 경험했었던 장소의 이름도진짜였다. 동성연애 사실은 출판되면서 삭제되었다.

In 1950 Anne Frank's father sued author Meyer Levin, the actual writer of thediary, over royalties from the book. A Jewish judge in New York ordered therecords of the court case sealed for 100 years. When the original diary was puton display a few years later, it was noticed that the most poignant sections ofthe book were interpolate w ion s written in a forged handwriting in BALL POINTPEN, a writing instrument which was not invented until 1950. The original diarywas swiftly removed from exhibit and whisked away into a safety deposit box inIsrael. It has never been produced for examination since then despite repeatedattempts by scholars to view it.

1950년 안나 프랑크의 아버지는 책에 대한 사용료에 대해 “안내의 일기”를 쓴 작가메이러 레빈(Meyer Levin)을 고소했다.
뉴욕의 유대인 판사는 책을 100년간 볼 수 없도록 봉하는 명령을 내렸다.

몇 년 뒤 일기 원본이 전시 되었을 때 책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서 볼펜을 이용해서 필사본을 위조해서 끼워넣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볼포인트 펜은 1950년 이전에는있지도 않았던 필기구다. 전시되어 있던 원본 일기는 갑자기 횡 하니 사라져 버렸고 이스라엘에 있는 비밀상자에보관이 되어있다. 그 이후로 누구도 이것을 연구하거나 조사할 수 없데 되어 버렸다.

28. WHAT ABOUT ALL THE NUMEROUS PHOTOGRAPHS AND FILM FOOTAGE ALLEGEDLY TAKEN INGERMAN CONCENTRATION CAMPS SHOWING EMACIATED CORPSES AND PEOPLE? ARE THESEFAKED?
28.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비쩍 마른 사체들과 아주 여윈 사람들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기록영화와 같은 필름과 수많은 사진들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조작인가?

Some are, but most of the fakery lies in the captioning. Corpses of German airraid victims, for example, are labeled as dead Jews. One famous andoft-reprinted photo purports to show a "Nazi SS man" about to shoot amother holding her child; on closer examination of the blurry print with amagnifying glass, it is clear to military historians familiar with the uniformsand weapons of the period that the killer is a Red Army soldier wielding aRussian-made carbine.

몇 개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자막이나 설명은 조작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공습으로 인한 독일인 시체들의 사진에 죽은 유대인이라고쓰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들고 있는데 총살하는 장면이 담겨진 유명하면서도 자주 재 인쇄가 되는 사진의설명에는 "Nazi SS man"이라고 쓰여 있다.

이 흐릿한 인쇄물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군대 역사가들은 사진에서보는 제복과 총을 잘 알고 있다. 사진속의 살인자는 붉은 군대 병사로 러시아제 카빈총을 들고 있다.

(The Exterminationist habit of blaming the Germans for atrocities actuallycarried out by Soviet dictator Joseph Stalin remains common, even though someof the more notorious examples like the Katyn Forest massacre of Polishprisoners have now been properly laid at the door of the Kremlin.

That this kind of fraud continues to be perpetrated by Holocaust"experts" is not surprising in view of the fact that almost all ofthem espouse Marxist or extreme left-wing views and are as quick to apologizefor and explain away Stalin's butcheries as they are to invent fraudulentcrimes attributed to Adolf Hitler.

The almost universally leftist political and social orientation of Holocaustdefenders is important and should always be born in mind when examining theirclaims; letting Stalin off the hook is almost as important to them asblackening and defaming the memory of Hitler and the German people. A goodexample of this is Nizkor leader Ken McVay's refusal to accept any more NSWPP.e-mail after General Secretary Covington asked him why he did not condemn themass murders of Stalin.)

(위에 부분은 변역이 힘들어서 놔둠. 내용은스탈린이 진정한 도살자라는 것.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수많은 독일 포로들을 폴란드에서 학살시킨 사실이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군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굶어 죽였다.당시 독일에서 피신해간 유태인들도 다수 포함 되어 있을 거라 추정됨)

29. WHAT WAS THE ROLE OF THE VATICAN DURING THE TIME IN WHICH SIX MILLION JEWSWERE ALLEGEDLY EXTERMINATED?
29.600만 유대인들이 죽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전쟁 당시 바티칸은 어떤 역할을 했나?

Had there been an extermination plan being carried out in a predominantlyCatholic country like Poland, the Vatican would certainly have been in aposition to learn about it. Since no such plan existed, the Vatican had no needto speak out about it.

만약 폴란드와 같이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들인 나라에서 말살계획이 있었다는것을 알았다면 바티칸은 분명히 이것을 알려고 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살 계획이 당초에 없었기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다.
(주-폴란드는 공산 정권이 들어섰을때에도 전체인구의 90% 이상이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30. WHAT EVIDENCE IS THERE THAT ADOLF HITLER ORDERED THE EXTERMINATION OF THEJEWS?
30.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는 어떤 증거가 있나?

None. No doc-umentary evidence of any kind indicating a deliberateextermination plan on the part of the Nazis has ever come to light. No signedorder from Hitler, from Reichsfuhrer-SS Heinrich Himmler, or from any otherfunctionary of the Third Reich ordering the extermination of the Jews has everbeen discovered.

The Nazis were meticulous records-keepers and literally tons of doc-uments wereseized by the Allies at the end of the war, so many it took Allied archivistsand scholars years to organize, file, and catalog them all. Nothing. Zip.Nada.

없다. 나찌의 어떤 부서에서 고의적인의도에서 말살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문서도 드러나 있지 않다. 히틀러가 사인했거나 SS-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또는 다른 어떤 제3국(독일)의 기관에서 명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근절시켜야 된다는 문서가발견되지 않았다.

나찌는 매우 신중하게 기록을 보관하는 사람들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연합군들은 엄청나게 분량의 문서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기록보관인들과 학자들이 몇 년씩 고용되어서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었다.전혀 없다. Nothing. Zip. Nada.

31. DID THE GERMANS AND THE ZIONISTS COLLABORATE BEFORE AND DURING THEWAR?
31. 전쟁 이전과 전쟁 동안에 독일인들과 시오니스트(유대인 시온니즘 숭배자들)이 협력했나?

Absolutely. Both groups were interested in removing the Jews from Europe (theZionists wanted the Jews shipped to Palestine) and they maintained friendlyrelations throughout the war. The German official in charge of shippingthousands of Jews to then British-occupied Palestine (including future Israeliprime minister Menachem Begin) was Adolf Eichmann; after the war the Holocaustindustry considered this secret so volatile and dangerous that Eichmann wasabducted by the Israeli Mossad and subsequently murdered in order to silencehim.

당연하다. 두 그룹들은 유대인들을유럽으로부터 이주 시키려는 것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가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 간에는 전쟁 동안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해 나갔다.

유대인들을 배에 싫고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이주(이스라엘 수상을 역임했던 ‘메나헴배긴’-Menachem Begin을 포함해서)시키는 책임을맡은 독일 장교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다.

홀로코스트 공장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입장에선 아이히만을 통해서 비밀이 세어 나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에 전쟁 이후이스라엘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하룻밤에 이스라엘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얼마가지난 뒤에 입막음을 위해 사형시켰다.

32. HOW MANY JEWS WERE IN AREAS WHICH CAME TO BE CONTROLLED BY THE GERMANSDURING THE SECOND WORLD WAR?
32.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차지했던 지역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나?
Slightly less than four million.
4백만이 좀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33. HOW MANY JEWS FLED DEEP INTO THE SOVIET UNION TO ESCAPE THE NAZIS?
33.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나찌를 피해 소련 깊숙이 도망갔나?
Over two million. The Germans did not have access to them to kill them.
2백만 명이 넘는다. 독일인들은 접근해서 죽일수 없었다.

34. IF EUROPEAN JEWS WEREN'T EXTERMINATED BY THE NAZIS, WHAT HAPPENED TOTHEM?
34. 만약 유럽의 유대인들이 나찌에 의해서 근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After the war most Jews emigrated to Palestine, the United States, Argentina,Canada, and Great Britain. Except for about 300,000, they are all accountedfor.
전쟁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그리고영국으로 이주해 갔다.
약 3십만 명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의 숫자가 나온다.

35. HOW DOES THE HOLOCAUST STORY BENEFIT THE JEWISH PEOPLE TODAY?
35.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유대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나?

It shields them from any criticism over their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behavior. It is instrumental in raising immense sums of "guiltmoney", especially from the German government. It justifies aid to thestate of Israel totaling almost $10 billion dollars per year from varioussources. Israel has received almost $70 billion dollars in assorted"Holocaust reparations" and the ante is growing every year. It isclearly in the interest of Israel and the Jewish people to keep the scamgoing.
홀로코스트 신화는 그들이 행동하는 정치적, 경제적그리고 사회적 행동으로 인한 어떤 비난도 차폐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독일 정부로부터 죄의 대가에대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여러 가지 재원으로부터 매년약 100억 달러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이 부여 된다.

이스라엘은 여러 종류의 홀로코스트 보상금으로 매년 약 700억불을 받고 있고 배당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이것은 명백하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이익 때문에 계속해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36. ARE FILMS LIKE doc-umentARIES?
36. ‘홀로코스트’"HOLOCAUST",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그리고 ‘전쟁의 폭풍’THE WINDS OFWAR",같은 영화는 다큐멘터리 인가?

Hollywood movies are not history and are not intended to be. They arefictionalized dramas. The characters in movies are actors, not real people, whoare being very highly paid for their portrayals of events that did not in factoccur. They read their lines from a screenplay written by Hollywoodscriptwriters, a profession where Jews are very highly overrepresented, as theyare in the studios and the creative and financial sectors of film making.
헐리우드 영화는 역사도 아니고 그런 목적도 아니다. 만들어진 드라마다. 등장 인들은 배우들이고 실존 인물들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인물이 되어서 연기하고 많은 돈을 받는다. 배우들은영화사가 고용한 전문 작가의 쓴 장면에 따라 움직인다. 헐리우드는 유대인들이 자금과 촬영장들이 있고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막강한 입김을 작용한다.

Hollywood is such an extremely unreliable source of history that in recentyears even mainstream reviewer s and commentators have begun to express doubtand suspicion over some films. For example, the character of Oscar Schindler asportrayed by Liam Neeson in Spielberg's production of "Schindler'sList" was sanitized to the point of being unrecognizable.

Schindler was portrayed as almost saintly, and yet none of those still livingwho remember the man have a single good word to say about him. The realSchindler was a confidence artist, a thief, a libertine and degenerate gamblerwho indulged freely in forced sexual relations with young female camp inmate s,who later abandoned his wife and fled with his mistress to Brazil afterembezzling a large sum of money.

Other major directors like Oliver Stone have come under fire because theirportrayal s of historical characters like Nixon and events like the JFKassassination reflect a paranoid obsession with the most bizarre of left-wingconspiracy theories.

헐리우드는 이처럼 극도로 믿을 수 없는 역사의 자료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최근엔주류의 비평 잡지나 방송해설자들도 영화에 대해서 의혹과 의심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리암 니센’(Liam Neeson)‘배역을 한’오스카 쉰들러’는 알 수 없는 부분에 삭제시켰다. 쉰들러를 거의 성인으로 묘사를 하고 아직까지당시인물들이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는데도 그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있다.

진짜 쉰들러는 사기 예술가에다 도둑에다 난봉꾼이었으며 지저분한 도박꾼이었다. 그는 수용소의젊은 여자들과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집중한 인물이다. 나중에 큰 돈을 횡령한 다음 그의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애인과 브라질로 도망간 인물이다.

올리버 스톤 같은 거장들도 닉슨(Nixon)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과JFK의 암살 사건을 아주 괴상망측하게 좌익주의자들의 음모이론과 편집증을 보이게 묘사했기 때문에 비난을 면하지못하고 있다.

37. ABOUT HOW MANY BOOKS HAVE BEEN PUBLISHED WHICH REFUTE SOME ASPECT OF THESTANDARD JEWISH CLAIMS ABOUT THE HOLOCAUST?
37. 일반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반박하는 책은 몇 권이나 출판 되었나?
Over 100, with more in the works.
100권이 넘는다.

38. WHAT HAS HAPPENED TO HISTORIANS WHO DISPUTE THE OFFICIAL VERSION OF THEHOLOCAUST?
38.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식적인 출판물에 대해서 반론하는 역사가들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

A variety of unpleasant things. Significantly, the Jews have always refused todebate the facts of the Holocaust openly with Revisionists. An Internet groupallegedly set up for this purpose called Nizkor does not in fact debateRevisionists, but engages in hysterical campaigns of ad hominem abuse againstanyone who dares to express any dissent or doubt in the Holocaustorthodoxy.

It is clear from many of the postings to Nizkor's Internet playgroups that theyhave attracted a number of people, mostly Jews but some left-liberal Gentilesas well, who are motivated by intense racial bigotry and ideological hatred ofanyone who disagrees with them, and who in some cases appear to be severelymentally and emotionally disturbed.

여러 가지 불쾌한 것들이다. 중요한것은 유대인들은 항상 공개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사실에 대해서 논쟁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조직된 것이라 보여지는 Nizkor라 불리는 한 인터넷 그룹은 실제로 수정주의자(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수정하려는 사람들)들과 논쟁을 피하고 히스테리칼한운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정통 홀로코스트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반대하는 어떤 의견을 가진 자들에게 상해를입히는 공격을 한다.

Nizkor인터넷 놀이그룹은 등재되고 지위를 부여한 많을 사람들을 보면 확실해진다. 그들이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지만 가끔 좌파 성향의 상류층도 있는데 그들은 강한 인종적 편협과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데올로기 혐오가들에의해서 동기를 부여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매우 심각한 분열 증세가 있는 사람들도있다.

The Jews respond to any questioning of the Holocaust with hatred, violence, andpersecution, which in itself is the surest giveaway that they have something tohide. In many countries those who ask politically incorrect or searchingquestions about the Holocaust are arrested, tortured, and imprisoned.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에도 유대인들은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혐오, 폭력과 귀찮게하게 만들거나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에 대한 폭로하는 반증인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치적으로부정확하다거나 뭘 알아보려는 질문에 대해서 체포하고, 고문하고, 감방에집어넣었다.

was assaulted by a Jewish gang who beat him so badly that he was almostcrippled. In California, a major Revisionist bookseller's offices were burned,and in Toronto Revisionist author Ernst Zundel's home was almost destroyed inan arson attack. Zundel was subjected to a bizarre series of show trialslasting over ten years, and after being finally acquitted he has been deniedCanadian citizenship and is still battling attempts to deport him to prison andtorture in Germany.

프랑스인인 호베르 파루리숑 박사(Dr.Robert Faurisson-안내의 일기 파해친) 는 유대인 갱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하는인신공격으로 거의 불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중요한 수정주의자의 책을 판매하는 직원은 불에 타 죽었다.

토론토 수정주의자 작가인 어네스크 준델(Ernst Zundel)이라는 작가의 집은 방화범의공격으로 거의 부서져 버렸다. 그는 일련의 기괴한 사건으로 10년이넘게 재판에 연루되었다가 결국 무죄로 판명이 되었고 캐나다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아직까지도 독일에서 당한 고문과 그를 추방해서 감옥에 집어 보낸것에 대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An American citizen, Gerhard Lauck of Lincoln, Nebraska, was kidnapped by theGerman government and at this writing is serving a lengthy prison sentence inGermany for the "crime" of writing pro-National Socialist commentaryIN THE UNITED STATES where it is legal. Another American citizen, Hans Schmidtof Florida, was also abducted, held in prison in Germany for almost a year, andreleased only after an international outcry. Schmidt's "crime" waswriting a pro-Revisionist article, in English, in a newsletter published anddistributed in the United States. German nationalist Manfred Roeder has beenimprisoned so many times he's lost count. Revisionists have been stripped ofjobs and academic posts, denied tenure in universities, victimized by harassinglawsuits, received bombs in the mail, and subjected to constant death threatsfrom Jews and Marxists.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는 미국시민인 게하르드 라우크(Gerhard Lauck)는 독일 정부에 납치 되어서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내용인데도, 국가 사회주의자를 옹호한 논평의 글이 독일에서 유죄가 된다는 이유로 장기 복역 형을 선고 받았다.

또 다른 미국시민인 플로리다의 ‘한스 슈미츠’(Hans Schmidt)씨도 역시 독일에서납치되어 1년간 복역을 했고, 국제적인 구호 운동으로 인해서풀려났다. 슈미트씨의 죄명은 수정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신문 기사를 영국에서 썼고 미국에 배포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 민족주의자인 ‘만프레드 뢰더’(Manfred Roeder)씨는옥살이를 너무 많이 해서 몇 번을 들어갔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수정주의자들은 직업과 학계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대학에서 재복직을 잃어왔다. 그리고 혹독한소송에 시달림을 당해야 하고 폭탄이 담긴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마르크스 주의자들과 유대인들에게살인 위협을 받아야만 한다.

THESE ARE NOT THE REACTIONS OF INNOCENT PEOPLE. Innocent people who are accusedof a crime or a fraud do not respond by trying to kill, imprison, or forciblysilence their accusers. More than anything else, the behavior of the Jews andthe governments they influence so strongly proves that the Holocaust is afraud.

If the Holocaust was true, neither the Jews nor any state authority would needto use force to silence criticism, any more than force need be used againstpeople who believe the earth is flat. The arrests, imprisonment, assaults andtorchings are the moral equivalent of a full confession on the part of theJewish people that they are contemptible liars who have imposed the mostmassive and vicious hoax in history on all of humanity, and have used that hoaxas an excuse to rob us blind, steal another people's country, and then toslaughter that country's original inhabitants at will, as according to NationalPublic Radio they are doing even now as I type this, in the town ofRamallah.

죄 없는 사람들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순진하고죄없는 사람들, 범죄나 사기로 고발당해도 고발한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거나 구속시키려거나 또는 강제적으로조용하게 만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가 가짜라는 강력한 증거에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과 정부들의행동이다. 만약 홀로코스트가 사실이라면 유대인들이나 어떤 정부도 폭력을 행사해서 시민들을 조용하게 만들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덜 필요하다. 체포와 감금, 기습 폭행, 고문등을 자행 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완벽히 사기꾼들임을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가장 무겁고 사악한 날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이런 날조된 내용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나라를 빼앗고 그 나라의 오리지날 민족들을 도살하고 있다.

39. HAVE THESE THUG GISH TACTICS SUCCEEDED IN SILENCING REVISIONISTS?
39. 이런 흉악한 방법으로 수정주의자들을 조용하게 하는데 성공했나?

No. They have only made Revisionists more determined than ever to ensure thatthe truth comes out and that the nations of the earth understand how the Jewishpeople have lied to them, defrauded them, and robbed them for over half acentury now with the Holocaust lie. There can be little doubt that insucceeding generations the Holocaust will be accepted by mainstream historiansand the public at large for what it is: a politically inspired hoax.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수정주의자들만 만들어서 어느 때보다 더욱 굳은 결의로 사실을 밝혀야 된다는 확신을 서게 한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국가들이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거짓말 해왔고 사기 행각을 해왔고, 지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홀로코스트가 거짓말로 그들을 갈취해 왔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다음 세대들이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서 홀로코스트를 받아들일 것이고 일반에게 널리 알려질것이고, 정치적으로 날조를 받아들여서 사용 할 것이다.

내용을 마치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은 잘 만들어 졌다.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한번에 3,000명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쏟아 부어 죽였다는 장소는 너무 비좁아 300명만 들어가도 사람들로 인해 질식사 할 지경이다. 그런 가스실과소각로가 있는 건물에서 장교 숙소가 15m 정도도 안 떨어져 있다.

美-英의 프로파간다

- 이미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진 유태인의 기름으로 만든 비누(Haaretz, Nazi Soap Stories Termed 'Invention', February 11, 2005)나 멩겔레 박사의 생체실험에 대한 얘기는 고사하더라도 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요언론의 反독일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한때 미국에서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유태인들이 조직적으로 감전사(感電死) 당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들까지 가미된 기사가 유포되기도 했다. (이 기사에는 가스실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45년 2월 미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소련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독일군이 “일시에 수백 명을 전기 처형할 수 있는 특수 콘베어 벨트를 가동했고 시신들은 벨트에 의해 소각로에 옮겨져 몇 초 내에 화장된 뒤 그 재는 근처 양배추 밭의 비료로 쓰였다...”고 보도했다. (United Press dispatch from Moscow; Washington D.C. Daily News, February 2, 1945)

 

 

- 당시 현직 미국 대법원 판사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연합국측 수석검사로 활약했던 Robert Jackson은 독일군이 일시에 2만 명의 유태인을 자취도 없이 “증발”시킬 수 있는 “새로 발명된” 기계를 아우슈비츠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blue series, Vol. 16, June 21, 1946)

그리고 가스실이라는 곳의 바닥엔 칸막이가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가스실 이전에 용도가 뭐였을까? 소각로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벽면은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 이 가스실 바닥을 촬영한 동영상이 돌아 다니자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와서 간단하게 보고 나가게 만들었다. 즉,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내부에 희미한 불빛만보이게 만들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시키고 있다

사망원인

- 전후 연합군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들의 운영과 관련된 수만 건의 독일 문서들을 획득했으나 이 가운데 독일 수뇌부가 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려 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는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태계 역사가들은 독일이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 관련문서들을 소각했거나, 혹은 독일이 모종의 암호 문서를 통해 대량학살을 조직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연합군이 확보한 독일 문서들 가운데 유태인에 대한 인종말살 계획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문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역사가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실 유태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압수된 독일 측 문서들은 독일과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강제수용소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유태인과 전쟁포로들을 동원한 강제노동시설이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Arthur Butz 교수에 의하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다른 수용수로의 배치를 기다리는 수감자들을 수용했던 일종의 강제노동인력 집결지였다. 아우슈비츠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온 이유는 노역이 불가능한 노약자나 병자가 주로 이곳에 수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탈출시도를 비롯한 수용소규칙 위반자들에 대한 처형사례를 제외하고 사망자 대다수의 사망원인은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특히 발진티푸스)의 창궐과 영양실조 및 기아였다. (Arthur Butz, The Hoax of the Twentieth Century, 1976)

- 유태계인 프린스턴대의 Arno Mayer 교수는 1942년 ‘반제회의’에서 도출되었다는 소위 ‘최종해법(Final Solution)'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사망자들 가운데 수용소 당국에 의해 처형된 숫자보다 각종 질병이나 기아에 의한 사망자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밝히고 있다. (Arno Mayer, Why Did the Heavens Not Darken?: The 'Final Solution' in History, 1989)

 

 

- 전쟁 중반기부터 많은 강제수용소들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발진티푸스를 억제하기 위해 독일 당국은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의도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독일이 유태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했다는 혐의에 반박하기 위해 피고측의 증거물로 제출된 문서들에서도 드러난다. 한 예로 1942년 12월 28일 친위대 산하의 수용소 관리행정국이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각 수용시설들에 하달한 공문은, “Heinrich Himmler 친위대 총감의 지상명령”이라는 전제 하에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의 절대적 감소를 위해 수감자들의 건강 및 영양상태와 작업환경을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상부에 제출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Nuremberg doc-ument PS-2171, Annex 2. NC & A red series, Vol. 4, pp. 833-834)

독가스 사용설

 

-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을 대량 살상하기 위한 독가스실이 가동되었다는 設은 독가스실이나 처형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는 유태인 前수감자들의 증언에 의존한다. 이는 전쟁 중 독일이 탄환 절약을 위해 독가스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연합군은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강제수용소들에서 - 딱히 유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 수감자들이 독가스로 집단 처형되고 있다는 요지의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작성된 전단을 자주 살포했다. 또한 같은 내용은 연합군이 운영하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주기적으로 전 유럽에 방송되었다.

- Marika Frank라는 한 유태인 여성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수감되었을 때는 하루당 최소 2만5천명의 유태인들이 독가스로 처형-화장되고 있었다는 1944년 7월 이었다. 1945년 2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그곳에 수감되어 있었던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머무는 동안 가스실에 대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으며 그곳에서 유태인들이 독가스로 살해되었다는 얘기는 전쟁이 끝난 뒤에 들었다고 술회했다. (Sylvia Rothschild, Voices from the Holocaust, 1981)

 

- 33년간 듀퐁社에서 화공학자로 근무했던 William B. Lindsey 박사는 1985년 캐나다의 법정에서 독가스로 그 만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technically impossible") 얘기라고 증언했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와 마이다넥에 전시되어 있는 가스실을 현지 조사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했다는 방법으로는 지클론-B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일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The Globe and Mail - Toronto, February 12, 1985)

 

 

*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주요 수용소들에는 실제로 이들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 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가스실이 존재했다. 이들의 목적은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를 죽이기 위해 수용소 운영진을 포함, 수감자들의 의복과, 침구 등을 소독하는 것이었다. DDT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클론-B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던 대표적인 살균소독제였다.

- Fred A. Leuchter는 사형수를 처형하기 위한 가스실 제작 전문가로 미주리 주(州)교도소의 가스 사형집행실을 도안하고 제작했던 보스턴 출신의 공학자이다. 1988년 2월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넥 “가스실”에 대한 현장조사를 단행한 그는 법정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단정했다, “현존하는 가스실 및 관련시설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 시설들에는 적절한 봉인장치와 환기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이 시설들이 독가스로 인명을 살상하는데 사용되었다면 독일인을 포함, 그 시설 밖에 있는 사람들도 안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The Leuchter Report: An Engineering Report on the Alleged Execution Gas Chambers at Auschwitz, Birkenau and Majdanek, 1988)

- 1944년 내내 매일같이 독가스로 살해된 수만 구의 시신들이 화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은 남아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대형화장터를 운영하는 Ivan Lagace는 1988년 4월 독일계 홀로코스트 연구가 Ernst Zundel 소송 심리에서 그와 같은 일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하루당 1만에서 최고는 2만구에 이르는 시신들이 화장되었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비상식적(preposterous)”이며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beyond the realm of reality)”이라고 증언했다. (Canadian Jewish News - Toronto, April 14, 1988)

국제적십자협회(International Red Cross) 보고서

 

“국제적십자협회 보고서가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전쟁의 말기를 향해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 수용소에서 대량 발생한 사망자들의 진정한 사망원인을 규명해주고 있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하면;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이후 독일의 수송체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특히 전쟁의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수용소들은 거의 식량을 보급받지 못했고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사자(餓死者)의 숫자는 급증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독일정부는 1945년 2월 1일 이와 같은 사실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통보해 왔습니다... 1945년 3월, 적십자협회 회장은 독일 친위대의 칼텐브루너 장군과 만나 문제를 논의했고 양자의 합의 하에 ICRC는 구호품을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ICRC 대리인을 수용소들에 상주시키게 되었습니다...’

Anne Frank
그녀가 쓴 일기로 인해 안네 프랑크는 아마도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유태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수 많은 다른 유태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안네와 그녀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44년 9월, 15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프랑크는 몇 주 뒤 Bergen-Belsen 수용소로 옮겨졌고 이 곳에서 1945년 3월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아우슈비츠에 남아 있던 중 발진티푸스에 감염된 오토 프랑크는 수용소 병원에 입원 중 병상에서 아우슈비츠에 진주한 소련군을 맞았다. 그는 1980년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 유명한 홀로코스트 역사가 제랄드 라이트링어(Gerald Reitlinger)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유태인의 숫자를 약 70만으로 추정했다. 좀더 근래에 들어서, 프랑스 홀로코스트 역사가 장-끌로드 프레삭(Jean-Claude Pressac)은 아우슈비츠의 총사망자 80만 가운데 63만 명을 유태계로 추정했다. (G. Reitlinger, The Final Solution, 1971; J. C. Pressac, Le Crematoires d'Auschwitz: La Machinerie du meurtre de mass, 1993)

 

- 1990년 5월 31일 프랑스의 보수성향 시사지 National Hebdo 는 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비유태인 포함)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떻게 수정되어 왔는가를 보도했다:

 

 

“8백만(프랑스 전범조사국) - 5백만(르몽드, 1978년 4월20일자) - 4백만(1990년까지의 아우슈비츠 기념관 추모비) - 3백만(아우슈비츠 소장 Rudolf Hoess의 자백) - 160만 (예후다 바우어 교수) - 125만(Raul Hilberg 교수) - 85만(제럴드 라이트링어, The Final Solution) - 7만5천(소련 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아우슈비츠 관련문서들).”

Date

Official sources of information

Figures

31.12.1945French Investigation Panel on Nazi-War-Crimes

8.000.000

19.08.1998Chief Rabbi from Poland (Süddeutsche Zeitung)

6.000.000

20.04.1978Le Monde (French daily paper)

5.0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5.000.000

20.04.1989Eugen Kogon, Der SS-Staat (famous book of a holocaust survivor, page 176)

4.500.000

31.12.1952Der Neue Herder (Enzyclop., Germany) 7th edition (p. 214)

4.500.000

01.10.1946IMT-doc-ument 008-USSR (Nuremberg Military Tribunal)

4.000.000

02.05.1997USA-Today (daily paper USA)

4.000.000

24.11.1989Chief Prosecutor, Mr. Majorowsky, Wuppertal, Germany (indictment 12 Js 1037/89)

4.000.000

26.07.1990Allgem. Jüdische Wo.Ztg. (Jewish weekly, Bonn)

4.000.000

08.10.1993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 Magazine)

4.000.000

25.01.1995Wetzlarer Neue Zeitung (German daily paper)

4.000.000

01.10.1946IMT-doc-ument 3868-PS (Nuremberg Military Tribunal)

3.000.000

01.01.1995Damals (official monthly magazine on history, sponsored by the Bonn government)

3.000.000

18.07.1990The Peninsula Times (daily paper, S.Francisco, USA)

2.000.000

25.07.1990Hamburger Abendblatt (daily paper Germany)

2.000.000

27.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quoting Chancellor H. Kohl. Minimum of 2 million)

2.000.000

02.05.1997USA-Today (daily paper USA)

1.500.000

11.06.1992Allgem. Jüdische Wo.Ztg (Jewish weekly, Bonn)

1.500.000

08.10.1993ZDF-Nachrichten (German TV, ZDF-News Magazine)

1.5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1.500.000

03.05.2000Die Welt (German daily paper)

1.500.000

01.09.1989Le Monde (French daily paper)

1.433.000

02.02.1995BUNTE Illustrierte (German weekly magazine)

1.400.000

22.01.1995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 edition)

1.200.000

27.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1.100.000

27.01.1995IfZ (Institut for Contemporary History, München, a government institution)

1.000.000

03.05.2000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reputed German daily)

1.000.000

31.12.1989Pressac, Auschwitz, Technique ... (official report on Auschwitz, commissioned by the Jewish Beate Klarsfeld Foundation)

928.000

27.09.1993Die Welt (German daily paper)

800.000

22.01.1995Welt am Sonntag (German daily, Sunday edition)

750.000

01.05.1994Focus (German weekly magazine)

700.000

23.01.1995Die Welt (German daily paper)

700.000

31.12.1994Pressac, Die Krematorien ... (2nd official report on Auschwitz, commissioned by the Jewish Beate Klarsfeld Foundation)

470.000

08.01.1948Welt im Film (British news reel, nbr. 137)

300.000

06.01.1990Frankfurter Rundschau (German daily paper)

74.000

31.05.1994Hoffmann, Stalins Vernichtungskrieg (Book on Stalin's war by a renowned German historian, p.302 f.)

74.000

17.08.1994Intern. Red Cross Arolsen - Department of holocaust investigations (Ref. nbr.: 10824)

66.206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2677&logId=397114


대형참사에는 우연이란 없다 -조지오웰-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오웰-

내용을 마치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은 잘 만들어 졌다.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한번에 3,000명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쏟아 부어 죽였다는 장소는 너무 비좁아 300명만 들어가도 사람들로 인해 질식사 할 지경이다. 그런 가스실과소각로가 있는 건물에서 장교 숙소가 15m 정도도 안 떨어져 있다.

그리고 가스실이라는 곳의 바닥엔 칸막이가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가스실 이전에 용도가 뭐였을까? 소각로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벽면은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 이 가스실 바닥을 촬영한 동영상이 돌아 다니자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와서 간단하게 보고 나가게 만들었다. 즉,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내부에 희미한 불빛만보이게 만들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시키고 있다

 

http://topfree.kr/xe/?mid=Notice&doc-ument_srl=26681&listStyle=viewer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 2014/07/24 02:17 | 폴란드Viewer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 때문에 세상에 나도는 글을 잠시 엮어 봤습니다.

아우슈비츠에 일어난 홀로코스트 진위는 알아서 판단 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들은 10년전에 사이트에 올렸던 들이며 8년간 공개 되었던 글입니다.

<아우슈비츠는 가짜다!>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진실을 속이는 것이 천배 만배 쉽다는 것을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하물며 오래전 일이라면, 언론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아우슈비츠 형무소에 가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는 것과

필자처럼 50번 이상 가서 뒤져보고 알고 있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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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 비루게네프-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시골 오슈비엥침의 독일식 발음이다.

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이지역 출신이다.

아우슈비츠에 한 번 들어갔던 정치인, 종교인, 창녀,  유대인이 다 죽었다지만

젊은 시절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멀쩡히 풀려나왔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둘러볼 때 가지는 의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은 잘 만들어 졌다. 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생지옥 같은 곳에서 중노동을 시키다 죽던지 말던지 할 사람들에게 저렇게 좋은 시설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숙소동 뒷 쪽에 가면 지금도 수영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장이 왜 있어야 하나?

한번에 3,000명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쏟아 부어 죽였다는 장소는 너무 비좁아 300명만 들어가도 사람들로 인해 질식사 할 지경이다. 그런 가스실과 소각로가 있는 건물에서 장교 숙소가 15m 정도도 안 떨어져 있다.

장교숙소 옆에 가스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가스실이라는 곳의 바닥엔 칸막이가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가스실 이전에 용도가 뭐였을까?

바로 장교들 식당이었다. 그래서 칸막이 흔적이 있는 것이다.

소각로도 급조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소각로 벽돌은 붉은 색이며 그으름이 거의 없다.

그 곳에 대한 동영상이 나돌자 최근엔 접근을 할 수 없게 조치를 취했다.

소각로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벽도 역시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 이 가스실 바닥을 촬영한 동영상이 돌아 다니자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와서 간단하게 보고 나가게 만들었다. 즉,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내부에 희미한 불빛만 보이게 만들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시키고 있다.

진짜 아우슈비츠에서 600만이 죽었다고?

다양한 조사를 한 결과 600만이라는 숫자가 거짓임에 드러나자 100만까지 내려갔다.

유대인 우파와 좌파간의 갈등에서 나오는 대화 중 "불과 몇 천명 죽은걸 가지고 왜 떠드냐?"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만 죽었나? 러시아는 1,500만명이 죽었다.

독일의 드레스텐은 피난민과 현지 민간인만 있었고 군대가 없었음에도 하룻밤의 공습으로 40만명이 죽었다.

이스라엘은 매년 1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피해보상금을 독일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받고 있다.

천문학 적인 금액 때문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우슈비츠 신화를 더욱 다지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세계 수 백 개의 사이트와 100종류의 책들이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그런 책을 만들거나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을

‘재평가론자’ (Revisionist 리비져니스트) 또는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재평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정주의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유대인 시오니스트에게 얻어맞아 중상을 입고 있고 체포되어 감옥에 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대량학살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즉, 언론의 자유가 절대 허용이 안되는 부분이다.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무기징역이다.(살인은 13-17년형을 사는데...)

 

관련 서적 : 홀로코스트 산업(원재 :The Holocaust Industry -2003 출간)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은이),

신현승 (옮긴이) 한겨레출판

아래 자료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오래전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한  40개의 질문에 대한 영문을 번역한 것이다.

8년 정도 공개되었던 내용이며 한 동안 닫았다가 다시 공개한다.

 

1. 나치가 대량학살 또는 유대인 6백만을 죽였다는 증거가 존재 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남은 개인들의 서로 상반된 증언이 있고, 죽은 자들을 보면서 어떤 가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만 있다.

결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사체를 소각해서) 쌓여 있는 재도 없었고, 모아놓은 옷도 없었고, 화장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고, 인간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도 없고, 사람의 피부로 만든 램프 갓도 없고, 어떠한 기록도, 사람에 대한 통계도 없다.

 

반면에 과학적 변론과, 인구학적인 분석, 기록물들, 수많은 일화등 엄청난 양의 증거가 있다. 600만 이라는 숫자의 유태인들이 죽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명백한 증거가 되는 비교 사실은 이런 과장된 내용이 1000% 거짓임을 보여준다.

 

2.독일의 집단 수용소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일본인들과 독일계 미국인들을 의도적으로 격리 수용한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명칭 이외에 단지 다른 것이라면 독일의 수용소 용도는 독일의 전쟁집중에 위협할 요소가 있거나 위협적인 인물들을 강제수용 시킨 것이다. 반면 미국은 민족과 국가가 어디냐를 근거로 해서 사람들을 강제 격리 수용시켰다.

이미지

-위 사진: 발진티프스를 막기위해서 머리를 삭발한 여성 수감자들-

3. 왜 독일 당국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시켰나? 

이유는 독일이 보기에 유대인은 독일의 종주권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으며 명백한 사실로도 드러났다. 유대인들은 압도적으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대표했으며 공산주의 전복을 주장했다.

 

유대인 개인 개인들은 정부, 사회, 미디어의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의 안전에 위험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자 강제 격리 되었던 것이다.

1933년 3월24일 국제 유대사회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 걸쳐 독일 물건 불매할 것을 정했다. 이런 운동의 이유는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을 끌어내리고 그 권력을 독일인들에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불매운동 전개와 유대가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세계 신문들이 보도했고 방송이 되었다.

 

사실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는 2차 세게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돌아다니던 말이다. 따라서 독일이 유대인들을 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은 지극히 정당화 된 것이었다 보여 진다.

 

4. 시몬 비젠탈은(SIMON WIESENTHAL) 독일 땅에 죽음의 캠프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1975년 4월에 출판된 *Books and Bookmen* 에서 그는 폴란드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가스로 죽였다고 했다.

 

5. 다카우DACHAU(주: 독일 Munchen뮨션에 있는 수용소)는 독일에 있다. 시몬비텐탈은 지금은 비록 다카우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었다라고 하는데 왜 수 천명의 미국 재향군인들은 다카우를 죽음의 캠프라 말하나?

왜냐하면 연합군이 다카우를 접수하고 나서 (그리고 고의적으로 다카우 전임자 수십명들을 법적인 절차도 안 거치고 죽였다), 미국 하사관들이 캠프를 보여 주었고 가스실이라 의심되는 건물을 보여 주었다.

 

공식적인 홀로코스트 일화에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조용히 삭제되었다. 이유는 연합군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지역인 이곳에 접근하는 것이 너무 쉽고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곳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앙 파상(En passant)의 ‘다카우 죽음의 캠프’ 라는 간략한 내용의 책이 처음으로 철저한 조사를 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신화에 대해 역사가와 몇몇 연합군 재향군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봤던 수용소와 읽었던 공식적인 기록이 상반되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지금과 같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이 교정되어서 힘을 얻기 한참 전의 일이다.

 

6.독일이 아닌 폴란드에 있는 아유슈비츠에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가스실이 존재 한다는 증거가 있나?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가스실은 가스를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곳이다. 공간이 너무 비좁고 공기가 차단된 곳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인 전문가 프레드 로흐터(Fred Leuchter)가 미국 패널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화학적인 조사를 위해서 아우슈비츠 가스실 벽을 긁어서 가져갔다. 미국인 패널들인 조사위원들은 아무런 청산가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아우슈비츠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거짓이고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단순하고 얄팍한 속임수다.

 

7. 만약 아우슈비츠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라면 이곳의 진짜 사용 목적은 무엇이었나? 

이곳은 대규모 제조 공장이었다. 화학 합성 고무(Buna)를 만들었고 노동인력은 수감자들이었다. 같은 논리로 미국에서도 현재 수감 인력들이 점점 늘어나면 교정 또는 징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같다.

(참고- 중국은 현재 수 천만 명의 수감자가 무임금 유노동을 하고 있다)

8. 악명 높은 지클론-비(Zyklon-B) 가스는 뭐냐? 

지클론 비는 상업적인 만들어진 시안화수소 가스 합성체다. 수 많은 공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가스를 옷에 훈증해서 기생충이나 해충들을 박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사용되었다. 지클론 비는 아직까지 제조되는 물질이며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지금도 구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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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공장을 가동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현재 쉽게 구매 할 수 있다고 한다)

 

9. 만약 아우슈비츠가 살인 캠프가 아니라면, 수용소 소장 이었던 루돌프 회스(RUDOLF HOESS)는 왜 살인 가스로 유대인들을 죽였다고 자백했나?  

회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에게 붙잡혔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회스는 600만 유대인들을 죽였다는 단 하나의 사항에 자백했고 (문서에)싸인 했지만 문서는 회스가 읽지 못하는 영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오리지날 문서들의 몇몇 페이지에는 글자 그대로 ‘회스의 혈흔’이 남아 있다. 회스는 간단하게 처형되었다. 연합군에 의한 시각에서 또는 다를 각도로 신문을 받아 보지 못했다.

 

10. 지클론-비가 사용된 공간을 환기시켜서 사람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약 20시간이 걸린다. 전체 과정은 극도로 조심스런 기술을 요한다. 가스 마스크를 사용해야 되고 숙달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

 

11. 루돌프 회스는 그의 자백에서 가스를 사용한 뒤 10분 만에 처리요원들이 방에 들어가서 죽음 유대인들의 사체를 끌어냈다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설명이 불가능 하다. 이유는 그런 식의 일은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독일군들이 그렇게 행동 했다면 근거 없는 주장으로 죽음을 맞이 했다는 유대인들처럼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이 되어 똑같이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12. 회스는 그의 자백 기록에서 그의 요원들은 가스실에서 시체를 끌어내면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가스가 가득한 방에 10분 뒤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 지클로-비는 폭발하는 걸로 아는데? 

폭발위험이 매우 크다. 회스의 자백은 명백히 조작된 것이고 6백만이라는 사항 역시 마찬가지다.

 

13. 어떻게 그런 집단 살인에 대한 계획내용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조차 비밀로 유지되어 오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바티칸 교황청, 국제 적십자 그리고 연합군의 정보기관에서 그런 사실들을 모를 수 있었을까?

미국의 OSS (註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 사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 의 침투와 영국의 첨보기관 MI5, 소련의 VKVD(비밀경찰)들이 ‘제3국’(독일을 지칭)에 침투하여 이것이 비밀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을 멸망시키려고 싸웠던 어떠한 연합군의 개인도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파워있는 잠제적인 선전의 무기로써 전쟁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당시 어떤 증거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용 할 수 없었다.

 

14. 독일 집단 수용소용서에서 실제로 몇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나? 

약 삼십만(300,000)명이다.

 

15.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대부분 전염병인 발진티프스 발병으로 죽었다. 발진티프스는 전쟁으로 상처가 난 유럽에 유행 했었다. 발진티프스는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발병한다. 전염매체는 기생충들인데 머리와 옷에 서식을 한다.

만약 독일이 더 많은 지클로-B를 살균의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더 많은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 유대인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의료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죽었다. 연합군들의 폭격으로 인해서 도로와 철도가 끊어지면서 도움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6. 숫자상에서 6백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와 삼십만 유대인들이 죽었다의 차이는 얼마인가? 

5,700,000(오백칠십만)명이다

질문의 요지는 제3국(독일)이 의도적고 계획적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을 근절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었냐 아니냐다. 증거들은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의 관심은 ‘집단 학살’이 있었다 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의 정체성과 그런 행동들 그리고 그들의 재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들 쪽으로 옮겨져야 된다. 악마인 그들은 지난 60년간 괴상한 중상모략으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거짓으로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17. 살아남은 많은 유대인들은 구덩이에 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는 걸 보았고 불을 태웠다고 했다. 그렇게 불태우는데 얼마나 많은 개솔린을 사용했나?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을 했거나 소모시킬 수 있었다. 확실하다

(주- 질문과 답이 엉뚱한 이 부분은 작성자가 실수도 다른 말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임).

 

18. (노천)구덩이에서 시체들을 불 태울 수 있는가? 

없다!

화염이 충분하지 않고, 열이 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구덩이에서 사람의 사체를 완전히 소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Harold Covington의 기록 : 군대를 가진 공산주의자들과 미국인들의 잔악행위를 관찰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가솔린이나 네이팜으로 한 집단의 사람들의 사체들은 한 구덩이 속에 넣어서 완전히 소각시키거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대량학살 전문가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귀찮아하는 증거 사실들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앵무새가 말하듯이 조잘대는 것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 홀로코스트 저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나찌들은 시체들은 소각시켜 재로 만드는데 10분 걸렸다고 했는데 화장 장례 전문가에 따르면 시체를 재로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나? 

약 2시간 걸린다. (당시기술로)

 

20. 왜 집단 수용소엔 소각로가 있나?  

발진티프스나 다른 병으로 죽은 사체들을 효율적이면서 위생적인 처리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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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사용했다는 소각로가 너무 깔끔하다. 전쟁이 끝난지 60년이 지났는데 이정도면 얼마전 완전 새로 만든 것이다.-

21. 독일이 통제하던 영역에 있던 모든 수용소에서 존재 했다고 알려진 모든 소각로를 100%가동해서 수용소가 존재하던 기간 동안 쉬지 않고(하루 24시간) 시체들을 소각한다면 총 몇 구의 시체를 처리 할 수 있나? 

약 430,600구의 사체다.

 

22. 소각로들은 당시 100% 가용을 했었나? 

당시에 있던 것을 최대한 많이 잡아도 50%만 사용 했었거나 하루에 12시간만 사용했다. 소각로들를 험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철저히 청소할 수 밖에 없었다.

 

23. 사체를 소각하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은 재가 남나? 

소각 후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뼈를 완전히 가루로 만든 다음 모으면 신발 한 켤레 박스 정도가 된다.

 

24. 만약 나찌가 6백만 명을 태워서 재로 만들었다면 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게 남았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설명이 되는 것이다. 6백만 명의 사체가 만든 재라면 글자 그대로 엄청난 톤수의 재들이 모인 ‘재의 산’이 된다. 아직까지 거대한 양의 재가 아우슈비츠 주변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고 다른 유럽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다.

 

25. 연합군 공군이 찍은 아우슈비츠 항공사진에 소각로에서 연기나 나오는 어떤 모습이라도 있나?

없다. 계속해서 수용소를 감시하면서 날아 다녔지만 그 사진들 속에는 많은 양의 연기가 올라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채를 태웠다고 하는 노천 구덩이라고 추정되는 곳도 발견되지 않았다.

 

26. 국제 적십자에선 모든 홀로코스트의 결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나? 

1944년 9월 IRC(국제 적십자사) 방문단의 아우슈비츠 방문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수감자들은 소포를 받을 수 있었으며 가스실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때 국제적십자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소위 홀로코스트와 광범위한 알려진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에 대한 조사 기록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흥미 있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1996년 미국과 유럽의 자유 매체들은 “나찌를 동조하는 국제 적십자”라고 주장하는 연속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날조다. 사실에 입각한 조사와 철저한 분석들이 빛을 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홀로코스트의 신화가 점차 무너져가자 다시 부추기기 위한 선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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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안나 프랑크의 일기는 사실인가?

아니다.

출판된 내용과는 다르다.

스웨덴의 디츨리에브 펠데레 (Dietlieb Felderer) 와 프랑스의 호베르 파이숑(Robert Faurisson) 박사가 조사해서 밝혀내서 발간한 자료 증거에 의하면 출판된 유명한 일기는 철저히 날조된 것이다. 안나 프랑크(Anna Frank)라는 소녀의 이름과 일기의 일부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레즈비언 동성연애를 경험했었던 장소의 이름도 진짜였다. 동성연애 사실은 출판되면서 삭제되었다.

1950년 안나 프랑크의 아버지는 책에 대한 사용료에 대해 “안내의 일기”를 쓴 작가 메이러 레빈(Meyer Levin)을 고소했다.

뉴욕의 유대인 판사는 책을 100년간 볼 수 없도록 봉하는 명령을 내렸다.

몇 년 뒤 일기 원본이 전시 되었을 때 책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서 볼펜을 이용해서 필사본을 위조해서 끼워 넣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볼포인트 펜은 1950년 이전에는 있지도 않았던 필기구다. (유럽은 1951년에 보급시작) 전시되어 있던 원본 일기는 갑자기 횡 하니 사라져 버렸다.

메이러 레빈은 3번째 안네의 일기를 작성했고 마지막으로 완성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첫번째 안네의 일기를 작성한 사람은 Otto Frank이 두번째는오토의 친구인 Meip Geis라는 여자에 의해서 였다.

 

그녀가 두번째 버전을 오토에게 주었다.

안네의 일가기 가짜라고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는 기사.

http://northerntruthseeker.blogspot.kr/2011/11/more-Viewerexposure-of-real-history-ann-frank.html

이미지

(1954년 적십자사는 안네 프랑크 1945년에 Bergen-Belsen에서 사망 했다고 확인했다.)

(안네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고 형무소에서도 그 곳에서 죽었다고 광고를 했었다.

그러나  공개된 문서에 의해서 안네는 아우슈비츠가 아닌 독일 하노베의 

베르겐 벨센 Bergen-Belsen 에서 당시 전염병 티프스로 죽었다.)

볼펜 발명에 관한 자료.

https://mirror.enha.kr/wiki/%EB%B3%BC%ED%8E%9C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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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필체:아래와 유령작가의 필체:위 비교)

 

28.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비쩍 마른 사체들과 아주 여윈 사람들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기록영화와 같은 필름과 수많은 사진들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조작인가? 

몇 개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막이나 설명은 조작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공습으로 인한 독일인 시체들의 사진에 죽은 유대인이라고 쓰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들고 있는데 총살하는 장면이 담겨진 유명하면서도 자주 재 인쇄가 되는 사진의 설명에는 "Nazi SS man"이라고 쓰여 있다.

 

이 흐릿한 인쇄물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군대 역사가들은 사진에서 보는 제복과 총을 잘 알고 있다.사진 속의 살인자는 붉은 군대 병사로 러시아제 카빈총을 들고 있다. 이 것은 러시아의 스탈린이 악행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 3대 도살자하면 스탈린, 이반뇌제, 피터대제이다. 스탈린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수많은 독일 포로들을 폴란드에서 학살시킨 사실이 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서 군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굶어 죽였다. 당시 독일에서 피신해간 유태인들도 다수 포함 되어 있을 거라 추정됨)

 

29. 600만 유대인들이 죽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전쟁 당시 바티칸은 어떤 역할을 했나?

만약 폴란드와 같이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들인 나라에서 말살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티칸은 분명히 이것을 알려고 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살 계획이 당초에 없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다.</FONT>

(주-폴란드는 공산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도 전체인구의 90% 이상이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30.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는 어떤 증거가 있나?

없다. 

나찌의 어떤 부서에서 고의적인 의도에서 말살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문서도 드러나 있지 않다. 히틀러가 사인했거나 SS-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또는 다른 어떤 제3국(독일)의 기관에서 명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근절시켜야 된다는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나찌는 매우 신중하게 기록을 보관하는 사람들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연합군들은 엄청나게 분량의 문서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기록보관인들과 학자들이 몇 년씩 고용되어서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전혀 없다. Nothing. Zip. Nada.

 

31. 전쟁 이전과 전쟁 동안에 독일인들과 시오니스트(유대인 시온니즘 숭배자들)이 협력했나?

당연하다. 두 그룹들은 유대인들을 유럽으로부터 이주 시키려는 것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가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 간에는 전쟁 동안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해 나갔다.

유대인들을 배에 싫고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이주(이스라엘 수상을 역임했던 ‘메나헴 배긴’-Menachem Begin을 포함해서)시키는 책임을 맡은 독일 장교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다.

홀로코스트 공장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입장에선 아이히만을 통해서 비밀이 세어 나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에 전쟁 이후 이스라엘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하룻밤에 이스라엘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뒤에 입막음을 위해 사형시켰다.

 

32.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차지했던 지역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나?

 

4백만이 좀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33.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나찌를 피해 소련 깊숙이 도망갔나?

2백만 명이 넘는다. 독일인들은 접근해서 죽일 수 없었다.

 

34. 만약 유럽의 유대인들이 나찌에 의해서 근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전쟁 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그리고 영국으로 이주해 갔다.

약 3십만 명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의 숫자가 나온다.

 

35.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유대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나?

홀로코스트 신화는 그들이 행동하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행동으로 인한 어떤 비난도 차폐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독일 정부로부터 죄의 대가에 대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여러 가지 재원으로부터 매년 약 100억 달러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이 부여 된다.

 

이스라엘은 여러 종류의 홀로코스트 보상금으로 매년 약 1,000억불을 받고 있고 배당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이익 때문에 계속해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36. ‘홀로코스트’"HOLOCAUST",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그리고 ‘전쟁의 폭풍’THE WINDS OF WAR",같은 영화는 다큐멘터리 인가? 

헐리우드 영화는 역사도 아니고 그런 목적도 아니다. 만들어진 드라마다. 등장 인들은 배우들이고 실존 인물들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인물이 되어서 연기하고 많은 돈을 받는다. 배우들은 영화사가 고용한 전문 작가의 쓴 장면에 따라 움직인다. 헐리우드는 유대인들이 자금과 촬영장들이 있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막강한 입김을 작용한다.

헐리우드는 이처럼 극도로 믿을 수 없는 역사의 자료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최근엔 주류의 비평 잡지나 방송해설자들도 영화에 대해서 의혹과 의심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리암 니센’(Liam Neeson)‘ 배역을 한’오스카 쉰들러’는 알 수 없는 부분에 삭제시켰다. 쉰들러를 거의 성인으로 묘사를 하고 아직까지 당시인물들이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는데도 그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있다.

 

진짜 쉰들러는 사기 예술가에다 도둑에다 난봉꾼이었으며 지저분한 도박꾼이었다. 그는 수용소의 젊은 여자들과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집중한 인물이다. 나중에 큰 돈을 횡령한 다음 그의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애인과 브라질로 도망간 인물이다.

올리버 스톤 같은 거장들도 닉슨(Nixon)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과 JFK의 암살 사건을 아주 괴상망측하게 좌익주의자들의 음모이론과 편집증을 보이게 묘사했기 때문에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37. 일반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반박하는 책은 몇 권이나 출판 되었나?

Over 100, with more in the works.

100권이 넘는다.

 

38.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식적인 출판물에 대해서 반론하는 역사가들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 

여러 가지 불쾌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항상 공개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사실에 대해서 논쟁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라 보여지는 Nizkor라 불리는 한 인터넷 그룹은 실제로 수정주의자(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수정하려는 사람들)들과 논쟁을 피하고 히스테리칼한 운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정통 홀로코스트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반대하는 어떤 의견을 가진 자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공격을 한다.

 

Nizkor 인터넷 놀이그룹은 등재되고 지위를 부여한 많을 사람들을 보면 확실해진다. 그들이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지만 가끔 좌파 성향의 상류층도 있는데 그들은 강한 인종적 편협과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데올로기 혐오가들에 의해서 동기를 부여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매우 심각한 분열 증세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에도 유대인들은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혐오, 폭력과 귀찮게 만들거나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에 대한 폭로하는 반증인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치적으로 부정확하다거나 뭘 알아보려는 질문에 대해서 체포하고, 고문하고, 감방에 집어넣었다.

 

 

프랑스인인 호베르 파루리숑 박사(Dr. Robert Faurisson-안내의 일기 파해친) 는 유대인 갱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인신공격으로 거의 불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중요한 수정주의자의 책을 판매하는 직원은 불에 타 죽었다.

 

토론토 수정주의자 작가인 어네스크 준델(Ernst Zundel)이라는 작가의 집은 방화범의 공격으로 거의 부서져 버렸다. 그는 일련의 기괴한 사건으로 10년이 넘게 재판에 연루되었다가 결국 무죄로 판명이 되었고 캐나다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아직까지도 독일에서 당한 고문과 그를 추방해서 감옥에 집어 보낸 것에 대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는 미국시민인 게하르드 라우크(Gerhard Lauck)는 독일 정부에 납치 되어서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내용인데도, 국가 사회주의자를 옹호한 논평의 글이 독일에서 유죄가 된다는 이유로 장기 복역 형을 선고 받았다.

 

또 다른 미국시민인 플로리다의 ‘한스 슈미츠’(Hans Schmidt)씨도 역시 독일에서 납치되어 1년간 복역을 했고, 국제적인 구호 운동으로 인해서 풀려났다. 슈미트씨의 죄명은 수정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신문 기사를 영국에서 썼고 미국에 배포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 민족주의자인 ‘만프레드 뢰더’(Manfred Roeder)씨는 옥살이를 너무 많이 해서 몇 번을 들어갔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수정주의자들은 직업과 학계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대학에서 재복직을 잃어왔다. 그리고 혹독한 소송에 시달림을 당해야 하고 폭탄이 담긴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마르크스 주의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살인 위협을 받아야만 한다.

죄 없는 사람들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순진하고 죄없는 사람들, 범죄나 사기로 고발당해도 고발한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고 하거나 구속시키려거나 또는 강제적으로 조용하게 만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가 가짜라는 강력한 증거에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과 정부들의 행동이다. 만약 홀로코스트가 사실이라면 유대인들이나 어떤 정부도 폭력을 행사해서 시민들을 조용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덜 필요하다. 체포와 감금, 기습 폭행, 고문등을 자행 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완벽히 사기꾼들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가장 무겁고 사악한 날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날조된 내용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나라를 빼앗고 그 나라의 오리지날 민족들을 도살하고 있다. .

 

39. 이런 흉악한 방법으로 수정주의자들을 조용하게 하는데 성공했나?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수정주의자들만 만들어서 어느 때보다 더욱 굳은 결의로 사실을 밝혀야 된다는 확신을 서게 한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국가들이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거짓말 해왔고 사기 행각을 해왔고, 지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홀로코스트가 거짓말로 그들을 갈취해 왔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다음 세대들이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서 홀로코스트를 받아들일 것이고 일반에게 널리 알려질 것이고, 정치적으로 날조를 받아들여서 사용 할 것이다.

 

현재도 독일의 지멘스와 같은 회사들은 이스라엘에 돈을 지불하고 있다. 

<관련된 자료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와 사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49943&sca=&sfl=mb_id%2C0&stx=sf1856Viewer

(정말로 600만명이나 죽었는가)라는 책을 쓰고 투옥된 독일계 캐나다인 에른스트 즌텔에 관한 글:

http://www.adl.org/learn/Ext_US/zundel.asp?xpicked=2&item=zundelViewer

(즌텔 체포에 관한 기사):

http://www.zundelsite.org/zundel_persecuted/feb25-05_media.htmlViewer

(대략 학살 검증):

http://www.nationalvanguard.org/story.php?id=6910"Viewer

(안내의 일기가 허위라는 자료):

http://northerntruthseeker.blogspot.kr/2011/11/more-exposure-of-real-history-ann-frank.htmlViewer

http://www.vho.org/aaargh/fran/livres4/RFAnneFrank.pdfViewer

http://www.thetruthseeker.co.uk/?p=4297Viewer

(안내의 일기에 관한 기사):

http://www.vho.org/GB/c/SV/120900.htmlViewer

http://www.rense.com/general65/aan.htmViewer

http://www.mathaba.net/news/?x=614599Viewer

http://www.heretical.com/sheppard/frank.htmlViewer

http://www.ihr.org/jhr/v03/v03p147_Faurisson.htmlViewer

http://www.campbellmgold.com/archive_general/anne_frank_diary_fraud.pdfViewer

(히틀러가 유태인의 멸종을 명했다고 하는 정설은 잘못된것이다 라는 기사):

http://www.guardian.co.uk/secondworldwar/story/0,14058,1645049,00.htmlViewer

(불과)"몇천명의 유태인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건"을 미국 유명 유대인 잡지 포워드에 게제된 내용에 대한 시오니스트 우파들의 공방):

http://globalfire.tv/nj/05en/persecution/bg_di_gr_sv_ez.htmViewer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이라는 사람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공개편지

http://unitypress.com/index.php?mid=free_board&page=1864&doc-ument_srl=100534Viewer


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로 이를 잡았을 뿐Viewer

http://kk1234ang.egloos.com/2547464Viewer

원문 : http://thruguide.tistory.com/m/post/228Viewer




 




모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신세계질서의 비밀' 저자 장화진입니다. 원본파일을 무료로 배포하기로 하였습니다.

http://cafe.daum.net/freemicro/QnxH/51]

시온 의정서(다운로드가능)

http://cafe.daum.net/freemicro/QnxH/58

유대인의 내부고발

http://cafe.daum.net/freemicro/QnxH/27

안네의일기  원본

http://cafe.daum.net/freemicro/1Cp3/233

아우슈비츠의 진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1179208

 

 

출처 : 지만원 시스템 클럽 자유 게시판 http://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3&wr_id=220569
전체 6

  • 2022-02-20 23:50

    현재 인류 전체가 새뇌당한 날조이지요. 이 홀로코스트를 빌미로 연간 700억달러가 이스라엘로 가며 그돈은 로스차일드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 2022-02-21 09:26

      글로벌리스트 욕하면서 유대인하고 이스라엘 빠는 새끼들 이 글 보면 조현병 도지겠네 ㅋㅋㅋㅋ


      • 2022-02-23 20:01

        뇌 정지급 인지 부조화임 ㅋㅋㅋ


      • 2022-02-21 19:23

        와.... 너무 감사드려요. 시간날때 다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 2022-02-20 09:21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 2022-02-24 00:54

            음모론 저장소가 아니라 교과서에 실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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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군분투 했지만 빅브라더스 시대로 가고 있고 것에 이변은 없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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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 유대 자본가들의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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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현2022.02.287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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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저커버그 외계인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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