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동이

명찰 롱 copy

2021년 12월 20일 19:10 UTC-04:00

언동이

나는 추위를 너무 잘 타서 별명이 언동이다. 추위를 잘 타는 게 꼭 내 탓은 아닌 것 같다. 초딩도 되기 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편도선 제거술을 한 후 찬바람을 맞으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다. 그러다 심해지면 천식 증상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찬바람을 맞지 않도록 둘둘 싸매서 키우셨다. 기억하건대 나는 11월도 안되어 내복을 입기 시작하여 5월이 되어야 벗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엄마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초딩 시절의 겨울엔 정말 가릴 수 있는 모든 곳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등하교를 했었다. 어린 나이에 쪽팔려도 어쩔 수 없었다. 말 안 듣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방한 장비의 수위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오래전 팬데믹이 없던 때에도 면 마스크는 내 필수 방한 장비 중 하나였다.

추위와 찬바람을 철저히 방어하며 살아온 결과 나 같은 언동이가 탄생했다. 추위를 도저히 못 견디고 뜨끈뜨끈한 열기에는 꿈쩍도 않는 언동이. 눈앞에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져도 날씨가 추우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 추운 겨울에 야외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군고구마를 먹거나 달콤한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낭만이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 같은 언동이는 미국에서 살기 참 힘들다. 병원에서 일하는 건 더더욱 힘들다. 유난히 더위를 못 참는 뚱땡이들이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 어딜 가나 에어컨 바람이 슝슝 나온다. 병원은 더 춥다. 불공평하다. 나이 드신 환자분들은 늘 추워하시는데 병원은 더운 사람들 위주로 세팅이 되어있다. 말 못 하는 노인 환자분들의 방은 딱 내 체온에 맞게 맞춰놓으면 다들 편안해 하셨으니 나 같은 언동이 간호사도 다 쓸모가 있는 게다.

“멋쟁이에게 추위란 없다”라는 말이 있는가. 멋은 얼어 죽을 개뿔. 사람은 자고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세뇌 속에 살아온 내게 성능 좋고, 주머니 많고, 반드시 모자가 달리고, 손목에 쫄쫄이 커프가 달려 철저히 바람을 막아주는 겨울 파카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라고. 나는 찬 음료 찬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한다. 푹푹 끓인 곰탕이나 찌개, 뜨거운 커피나 차를 좋아한다. 아이스크림도 땡기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아이스커피를 돌아보지 않는 언동이가 바로 나다. (냉면은 예외)

오늘은 영하 1도. 클리닉이 냉장고 같다. 직원들이여, 니들 안 춥냐. 내가 어딜 가나 소형 전기 히터를 보물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는 게 다 니들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내심 반기는 장본인이 바로 난데 이게 글로벌 개뻥이라서 참 아쉽다.

SPIKA STUDIO

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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